[칼럼] 중동 이야기 Ⅳ ... 사우디 아람코 상장 이야기 (3)
[칼럼] 중동 이야기 Ⅳ ... 사우디 아람코 상장 이야기 (3)
  • 김선규
  • 승인 2021.02.15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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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대 환장 파티와 아람코 상장을 결심하게 된 과정

[컨슈머와이드-김선규] 오늘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대 환장 파티와 아람코 상장을 결심하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 '나 왕세자 맞어?' – 왕실과 국제정세가 받쳐주지 않는 MBS

지난 2019년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캡처)

어찌어찌하여 우여곡절 끝에 사촌인 빈 나예프가 왕세자에서 쫓겨나고, 2017년 6월 자신이 적법한 세자가 된 무함마드 빈 살만 (이하 MBS라고 부르겠다. 국제 호칭이 이것이다) 은 머리가 아팠다. 우선 자신 외에 다른 형들인 사촌들이 있었다. MBS는 7째지만 장남이었는데 다른 사촌 형들이 자신에게 딴지를 건다는 것이었다. 아니, 아버지인 살만 국왕도 압둘아지즈의 25왕자인데도 왕이 되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그런데 문제는 형제계승에 익숙하던 다른 왕족, 특히 살만 전대의 왕의 아들들, 곧 빈 나예프를 비롯한 사촌 왕자들이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지금 사우디 왕족이 추정으로 작년에 1만명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뭐,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문제가 또 있었다. 바로 종교지도자들과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이다. 개혁개방을 진행하려면 바로 종교개혁이 필수인데, 사우디는 와하비즘에 근거한 한발리 학파가 주류였고 이들이 정치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것이 더 문제였다. 실제로 이후 MBS는 종교지도자를 사형까지 구형할 정도로 이들의 융통성 없는 모습을 싫어했고, 이는 종교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시아파는 더욱 싫어해서 사우디 내부의 시아파 성직자들을 대거 처형했고 그 후폭풍이 거세지자 이란과 단교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MBS는 종교가 자신의 권위에 영향을 주거나 도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은 상태였다.

거기에 더 큰 문제가 생겼으니 바로 유가가 더 이상 OPEC, 특히 사우디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미국은 셰일오일을 퍼내기 시작하면서 사우디의 생산량을 가뿐히 제껴버리는 문제가 발생한 지금, 기름값이 이전만큼 자신의 뜻대로 조절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은행돈으로 계속 살아남으면서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을 지닌 셰일업체들이 꼴보기 싫었던 사우디 아람코는 미국과 기름 퍼내기 치킨게임을 했다. 그 결과 100달러가 넘던 유가는 배럴당 25달러까지 폭락했고 이때부터 중동 산유국들은 재정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2004년 2차 걸프전 이래로 기름값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가는 시절이 10년이 넘어가면서 방만한 경영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유가의 폭락이 나오자, 산유국들은 이전에는 한번도 발행해 보지 않는 국채를 발행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적자재정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적자를 보이는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국민들에게 매월 지급하는 보조금이었는데 2016년, 쿠웨이트가 이 보조금을 줄였다가 무슬림형제단이 대거 당선되면서 국회를 장악한 것을 보고 경악했던 것이다. (물론 왕명으로 국회를 해산 후 보조금 원상복귀하고 다시 선거를 치러 사태를 수습했다.)

쿠웨이트는 책임질 원주민 인구가 40만도 채 안됐지만 사우디는 1000만명이 넘어가고 거기다 지금까지 왕실에서 부조리가 나오면 이것들을 왕실 재산으로 메꿔주는 일들이 많다 보니 자연히 왕실재산은 쓸데없이 엄청난 누수가 있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왕세자인 MBS는 더 이상 석유가 자신의 치세에는 도움을 줄 수 없고 다른 돈줄을 찾아야만 하는 절박한 사정에 다다른 것이다.

■ '종친 여러분 나라를 위한 겁니다' – 사상 초유의 왕족 감금사건

이리하여 MBS는 나름 여러 자문기관과 자국의 지식인들을 불러가며 이것저것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웃기는 것은 이 상황에서도 살만 국왕은 거의 쿠데타 급의 이런 아들의 행보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왕인데 정책은 아들이 세우고 간다? 이건 왕이 볼 때 거슬리면 바로 폐세자로 직행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살만 국왕은 그냥 두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MBS가 자신이 하고 싶어도 대놓고 하지 못하는 개혁정책을 많이 심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여권신장, 첨단산업 육성 등등의 혁신적 정책을 내놓게 되자 국민들은 MBS에게 좋은 여론을 가지게 되었다. 즉, 살만 국왕은 아들에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뒤로는 아들의 정책에 아무 태클을 걸지 않으면서 뒤로 아들을 밀어주는 것이었다. 달리 살만이 정치 9단인 게 아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네옴 신도시 및 각종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방에 흩어져 있던 총독(이라고 하고 삼촌과 사촌들이라고 읽는다)들이 MBS의 정책에 태클을 걸어온 것이었다. 이들의 불만은 다음과 같았다.

“아니, 지금 돈도 없는데 무슨 신도시야 신도시는! 기름값도 지금 똥값인데, 돈은 어디 땅 파서 나와?”
“땅 파서 나온 기름 팔아서 나오잖아. 뭐가 문제인데?!”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지방분권 좀 하자고 지방분권! 우리도 지금 동네마다 신도시 세우느라 여러가지로 돈이 드는데 우리가 그 돈 끌어오려고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되는지 아냐고! 국책사업 자금을 우리한테도 좀 풀어 줘야지, 그 돈들을 왜 왕세자 네가 혼자 다 인 마이 포켓하냐고? 우리도 먹을 게 있어야 할 거 아냐!”
“하, 나 원…  지금 신도시가 내가 잘 되자고 하는 거 아니잖아. 이게 나라를 위한 일이지, 내가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이야?”
“어쭈, 왕세자 됐다고 이 나라가 네 것인 줄 아니? 우리는 핫바지이냐고! 됐고, 우리 동네에 돈 준다면 우리는 너를 왕세자 인정못해”

그랬다. 이들 지방 총독들에게는 자기 땅에서 히히덕거릴 수 있는 충분한 돈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거기에다 MBS의 분노를 부르는 일이 또 있었으니 바로 서부의 제다에 있는 킹덤홀딩스 회장인 알왈리드 빈 탈랄이었다. 그는 네옴 신도시 프로젝트를 옥상누각이라고 비난하면서 반(反) MBS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저렇게 돈이 있고 지방에 세력이 있으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왕족이 나온다면? 결국 쿠데타는 아니라도 자신의 권위에 흠집이 생기게 마련이고 앞으로 MBS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결국 MBS는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해 특단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으니, 바로 600명 이상의 왕족들을 6성 리츠 칼튼 호텔에 감금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시간도 절묘하게 이란과 단교하고 나서 바로 민심을 돌리기 위해 반부패 운동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던 이 조치는 아이러니하게도 민심의 지지를 받았다. MBS의 지지율이 올라갔던 것이다. 이것은 국민들이 그 동안 말을 못해 그렇지 이들 왕족들의 횡포와 부정부패가 상상을 초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텔 1개로도 모자라 바로 옆의 다른 호텔을 하나 더 빌렸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왕족들은 자산몰수 및 출국금지 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MBS에 충성맹세를 해야 했다. MBS는 악명높은 민간군사기업 블랙워터를 고용하여 왕족들을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폭행을 당하거나 사망한 왕족도 발생했다. 말 안듣던 알왈리드 회장도 결국은 충성 맹세하고 자산 헌납한 후에 풀려났다. 

꿩먹고 알먹고 돈 모으고 민심얻고 MBS 역시 살만 국왕의 아들이었다. MBS는 이렇게 모은 자금으로 일단 어찌어찌 국채를 메꾸고 자신의 신도시 프로젝트를 위한 종자돈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이 모든 난국을 헤쳐 나가기에는 돈이 모자랐다. 이제 남은 것은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 사우디 아람코를 어떻게든 비싼 값으로 파는 것이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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