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코의 기름매장량 이야기, 그리고 아람코 상장을 진행할 모하메드 빈 살만 (MBS)이 왕세자가 될 때까지의 과정

(사진:아람코 홈페이지)

[컨슈머와이드-김선규] 이번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난 시간에 아람코 설립연도에서 약간의 착오가 있어서 정정해야 겠다. 아랍 아메리카 오일 컴퍼니, 즉 아람코는 1933년 생이다. 1943년이 아니다. 그리고 사우디 건국은 공식적으로는 1932년이지만, 실제로 나라구실 제대로 하게 된 것은 1940년, 즉 유조선 접안 시설을 갖추고 제대로 된 석유 수출을 진행한 시기부터이다. 따라서 그 이전의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실상 껍데기이고, 기름 장사를 갖춘 시점부터가 진짜 사우디의 역사라고 보면 된다. 오늘은 아람코의 기름매장량 이야기, 그리고 아람코 상장을 진행할 모하메드 빈 살만 (MBS)이 왕세자가 될 때까지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 어이, 지금 기름 얼마나 남았냐!! – 매장량 발표 중단 사태

1939년 최초로 기름 수출을 시작하고 1940년부터 폭발적인 기름 수출을 시작한 사우디, 어느덧 시간은 흘러 1980년대가 되었다. 그 동안 기름밸브 두 번 잠가서 전 세계에 기름으로 공갈을 제대로 친 사우디, 이번에는 은근슬쩍 자신의 매장량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아람코는 미국 석유회사들과 컨소시엄을 맺고 자신들의 주요 유전의 가채 매장량을 확인하는 용역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그 결과가 나온 후, 사우디는 그 동안 매년 꾸준히 발표했던 석유 매장량 보고서를 현 시점까지 발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여러가지 썰이 많이 있지만 가장 믿을만한 것은 그들의 매장량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고, 이 내용이 발표되면 유가가 급락할 것을 우려한 사우디 왕실에서 아람코에 압박을 넣어 매장량 발표를 막았다는 설이다. 지금까지 기름 생산량이 2019년이 될 때까지 줄어들지 않은 것을 보면 이 설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물론 자신들의 매장량이 너무 없어서 이를 숨기고 해외유전개발에 돈을 투자해서 거기서 나온 석유로 생산량을 벌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엄청난 물량의 석유를 지금까지 뽑아내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이것은 그렇게 믿을만한 설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유전인 가와르 유전을 비롯하여 아부카이크, 사파니야 등의 대규모 유전은 세계 3위 규모의 대규모 석유를 뽑아낼 수 있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가 조절의 한 축으로 아직까지 입김을 가지고 있다.

■ 도대체 내가 살아서 왕이 될 수 있겠냐? – 형제 상속의 왕좌, 그리고 MBS

지난 2019년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캡처)

일단 압둘아지즈 국왕이 사우디아라비아를 건국한 이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였다. 일단 아들이 후계자가 되는 것은 모두 동의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 아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이였다. 압둘아지즈가 누구인가? 왕조 창립자이자 왕국의 시조이다. 당연히 부인이 한둘이 아니다. 거기다 무슬림이라 부인은 네 명까지 둘 수 있다. 그러면 이들 왕비들의 관계가 우리나라같이 중전과 후궁들의 사이 같은 것이냐, 그게 또 전혀 아니었다. 무슬림 율법으로는 모든 부인을 동등하게 대해야 했다. 따라서 순서의 차이는 있어도 모든 왕비가 동등하게 대우를 받았다, 표면적으로는.

그런데 압둘아지즈 국왕은 알게 모르게 부인을 17명을 두었고 이들에게서 낳은 아들이 50~60명이 된다는 설이 있다. 일단 공식적인 4명의 부인에게서 나온 아들만 15명이다. 그럼 나머지 13명의 부인은 어떻게 들인 것인가? 그 방법이 참으로 뭐한 것이, 일단 첫째 부인은 죽어도 쫓아낼 수 없다. 그러면 방법은 둘째 부인 이하에서 맘에 안 드는 부인과 이혼하고 (이 때 위자료는 거하게 줘서 보낸다. 명색이 왕이니까) 다시 새 부인을 들이는 방법으로 4명의 부인 쿼터를 유지한다. 그러면서 열심히 자식을 낳았다.

그런데 문제는, 압둘아지즈는 유달리 셋째 부인인 수다이리를 너무 좋아해서인지 이 부인에게서 아들만 일곱 낳는다. 이상하게 중동에서는, 특히 왕가에서는 둘째나 셋째 부인이 가장 많이 대접을 받는다. 그리하여 이 많은 왕자들은 사실상 잠재적인 경쟁자들로서 어머니가 누구냐에 따라서 서로 파벌이 갈리면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자기들끼리 후계 경쟁을 하게 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압둘아지즈 국왕 사망 후, 박 터지는 왕자의 난을 벌인 이후, 왕자들은 일단 장자인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를 2대 국왕으로 추대하고 수다이리파의 파이잘을 왕세제로 정해 갈등을 일단 봉합했다.

문제는 사우드 왕께서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혼자서 신나게 플렉스 하시는 바람에 왕족과 종교지도자들에게서 버림받아 강제 폐위된 것이다. 수다이리파 형제들이 입김을 불어넣었다고는 하지만 물증이 없으니 심증만 있다.

그 후 왕세제였던 파이잘이 3대 국왕이 되자, 왕은 지금부터는 형제상속이라는 꼼수를 부리게 되어 수다이리파 형제들이 순서대로 왕을 해먹으면서 장기 득세하게 된다. 그러다 2005년 비(非) 수다이리파인 압둘라 국왕이 집권하고 10년 간은 여러가지 개혁정책이 추진되었고 어느 정도는 수다이리파들을 견제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시간에 사우디 후계 관련해서 또 약간의 착오가 있어서 다시 알려드린다. 나예프 왕세제가아니라 나예프 왕세자, 즉 다른 왕의 아들이었고 살만 왕의 조카였던 나예프를 왕세자 삼았다 쫓아낸 것이다. 이렇게 이름 비슷한 왕자가 너무 많다. 
 

그러나 2015년 압둘라 국왕이 사망하자 왕실 후계선출 위원회에서는 다시 수다이리파의 6왕자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를 국왕으로 추대했다. 그런데 살만 국왕, 집권한 이후에 다시 꼼수를 썼다. 여러 요직을 두루 섭렵해서 정치 9단이 되었던 그는 자기 형제들한테 그 동안 치인 게 많았는지 막내인 아흐마드를 왕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수다이리 형제들은 다 제외하고 자기 아들인 (지금의 빈 살만 왕세자다)과 자신의 후손만이 영구 집권하겠다는 욕심을 부리게 된 것이다.

물론 당장 그렇게 하면 반발을 살 것이 뻔한 것을 알고 있던  살만왕은 다른 왕의 아들이었고 자신의 조카였던 나예프를 왕세자로 삼았다 쫓아내는 등 여러가지 정치활동을 하다 마지막엔 결국 자기 아들인 빈 살만을 왕세자로 책봉을 해 버렸다. 그리고 빈 살만 왕세자는 자신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서 여러가지 활동을 벌이게 된다.  (다음주에 계속)

 

저작권자 © 컨슈머와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