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양은미] 유명 작가라면 모를까 일반 작가가 대형서점에서 사인회를 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나 그만큼 큰 부담이다. 필자는 그동안 책은 많이 출간했지만, 저자사인회를 열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첫 사인회를 연다는 설렘은 하루도 못 가고, 이후 걱정에 시달렸다.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아서 휑한 공간에 나 혼자 검정 사인펜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으로 여러 날을 보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사인회가 내리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행사에 비가 오면 오는 사람이 줄어들까봐 행
[칼럼니스트-인세호] 격동의 겨울과 봄이 지나고 여름이 찾아왔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줄곧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문화예술 계통 종사자들은 지난 몇 년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특히 출판업 종사자로서는 ‘전자책 제작 지원 사업’을 신청하는 족족 탈락한 것이 충격적이었다. 큰 문제가 없는 한 신청하기만 하면 통과된다는 것이 업계 상식이었기에, 통과 일정에 맞추어 잡아놓은 전자책 출간 일정을 미룬 곳도 적지 않을 것이다.그뿐만 아니라 아르코의 예술 지원 사업 등도 대폭 축소되어 예년이라면 거뜬히 통과되었을 내용도 탈락했다
[칼럼니스트-인세호] 작년부터 심심치 않게 일본의 쌀 가격 폭등에 관한 기사가 보인다. 며칠 전에는 SNS에서 10kg 1만 엔(약 96,000원)이 넘는 가격에 쌀을 샀다는 말이 돌았을 정도니,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는 모양이다.쌀 5kg 기준 2023년 1,800엔, 2024년 2,200엔 수준이었던 슈퍼마켓 쌀 가격은 2025년 3월 현재 4천 엔으로, 전년 대비 약 두 배가 되었다.(https://www.maff.go.jp/j/syouan/keikaku/soukatu/r6_kome_ryutu.html)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
[칼럼니스트-인세호] 공항의 ‘기도실’ 안내 아래에 붙어있는 낯선 표지판이 SNS에서 화제가 되었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선으로 해바라기가 그려진 표지판은 맨체스터 공항 제1터미널의 ‘해바라기실(Sunflower room)’. ‘비가시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소음이나 밝은 빛, 인파를 피해 조용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우울증이나 자폐 스펙트럼, 불안장애, ADHD 등, 타인이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생활에 영향을 주는 상태를 비가시적 장애라고 하는데,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어 여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2
[칼럼니스트-인세호] 어렸을 적 냉장고를 열면 늘 유리병에 담긴 보리차가 보였다. ‘델몬트’ 마크가 인쇄된 유리병에 든 보리차에서는 가끔 오렌지 향이 났다. 유리병 생산이 중단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추억의 맛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종이 팩이 더 익숙해졌지만, 유리병에 담겨 집으로 배달되던 서울우유도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우유 맛이 달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입술에 닿던 동그랗고 두꺼운 유리 모양과 차가운 감촉만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가끔은 그 느낌이 그리워 일본에서
[칼럼니스트-인세호]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에서 최근 온라인 게임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람이 열중하는 디지털 콘텐츠 중 ‘집 꾸미기’가 있다. 게임 내 좋은 집터와 큰 집의 낙찰에 목숨을 걸고, 집이 사라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관리하는 것은 물론, 인테리어에 공을 들여 관광 명소가 되기도 한다. 디지털 라이프에서도 현실 세계와 다르지 않게 집을 소유하고 멋지게 꾸미는 것을 부차적인 목표로 삼는 사람은 적지 않다.장사는 목 좋은 곳, 영화관이나 공연장에서는 시야가 좋은 자리를 원하는 것은 누구나 당연하지만 목욕탕에서까지 빈 의자를 찾는 데
[칼럼니스트-인세호] 경칩이 지나자 단숨에 콧바람 쐬러 나가기 좋은 봄날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 가족이 입원하고 그 뒤에 이어지는 갖가지 일들을 수습하느라 숨돌릴 새가 없었는데, 슬슬 다 같이 놀러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최근에 생긴 여행의 목표는 일행에게 언제라도 부담 없이 여행 갈 수 있다고 알리는 것이다. 나이가 들거나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행동반경이 좁아진다면 그만큼 답답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배리어 프리를 신경 쓰고 있으면서 오고 가는 데 큰 부담이 없는 여행지를 고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이 꼽힌다.
[칼럼니스트-인세호] 지난 1월 16일, 웹툰 플랫폼 ‘피너툰’이 X(구 트위터) 계정을 통하여 2월 말일부로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플랫폼 사이트에 접속되지 않는 등 고객들의 불안이 고조되는 와중, 플랫폼에 작품을 연재 중인 작가와 직원에게도 16일 당일 사업 종료 사실이 고지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다음 달인 2월 20일에는 웹툰, 웹소설과 기반 IP 사업을 하는 리디(주)의 자회사 ‘오렌지디’가 2월 말일부로 사업 철수를 결정하였다. 오렌지디 역시 사업 철수 당일, 이 사실과 계약 이관에 대한 안내를 작가들에게 통보
[칼럼니스트-인세호] 일본 여름의 풍물시 하면 여름 축제와 불꽃놀이를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다양한 미디어는 무더운 여름밤에 유카타를 입고 외출하여 강가나 바닷가의 하늘을 수놓는 불꽃을 보면서 ‘타마야’, ‘카기야’(에도시대의 양대 불꽃 장인)를 외치는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다. 유카타를 입은 젊은 남녀가 발등 끈이 끊어진 게다(나막신)를 계기로 친해지는 묘사도 종종 보인다.여름에 가볍게 입을 수 있는 유카타는 원래 헤이안 시대의 귀족들이 목욕할 때 입는 옷이었다. 옛날에는 습식 사우나에 여러 사람이 들
[칼럼니스트-인세호] 내 일본 여행의 첫 목적지는 도쿄였다. 당시 여행사에서 보내준 두툼한 일정표에는 일본의 지하철 노선도가 첨부되어 있었고, 여행 안내 책자에는 같은 전철이라도 운영회사가 다르면 탈 때마다 새로 표를 끊어야 한다는 주의 사항이 쓰여있었다. 매번 기념 삼아 지하 노선도를 가져오던 때로부터 십 년이 더 지나서야 일본에서 버스를 타게 되었다.지금은 한국에서 가까운 후쿠오카가 여행지로 주목을 받고 있어 일본 버스 이용법도 널리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해외에서 버스를 탄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 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서울에
[칼럼니스트-인세호]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대형 산불이 며칠째 진화되지 않는 와중, 매년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던 캘리포니아주의 화재가 유례없는 규모로 발전한 원인을 분석하는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유독 건조해진 캘리포니아 남부. 호화 주택의 무분별한 물 사용으로 고갈된 지하수,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전통인 불놓기를 금지하여 비옥해진 땅 등, 그중 제일 큰 문제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중 문제가 아닌 것은 없다. 또, 이번 산불로 1만여 채에 달하는 주택과 건물이 불타서 사라졌다. 미국 주택의 90%가 목조 건물인 만큼
[칼럼니스트-인세호] 연말연시가 되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토정비결이나 사주를 무료로 볼 수 있는 사이트를 흔히 볼 수 있다. SNS에서는 간이 MBTI나 클릭 몇 번으로 간단하게 볼 수 있는 심리 테스트가 매일매일 쏟아져나오고 있다.몇십 년 전에는 본격적인 점집이 아니면 신문에 실리는 띠별 운세나 잡지에 실리는 별자리 운세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나마 생년별로 나뉜 한마디 점괘에는 내 또래를 위한 것은 없었다. 그러던 와중 금화 출판에서 펴낸 리틀레이디 시리즈는 소녀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사춘기 소녀의 고민을 다룬 『소라의
[칼럼니스트-인세호] 2024년을 휩쓴 K-POP 스타를 말하라고 하면 누구라도 ‘뉴진스’를 언급할 것이다. 새로운 앨범 발표, 민희진 (전)대표의 충격적인 기자회견, 도쿄돔 콘서트의 완성도 높은 무대, 국정감사 증언, 그리고 소속사와의 계약 해지 선언까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 요즘 식으로는 여자아이들이라고 부를만한 나이대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그룹이, 가수로서의 활동뿐만이 아니라 성서 속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하게 하는 싸움의 주역으로서 주목받고 있다.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또렷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모습을 보
[칼럼니스트-인세호] 2024년 마라톤 시즌이 끝나가고 있다. 유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이 시즌에 맞추어 웹툰 작가의 풀 마라톤 도전을 다룬 것을 보면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러닝 붐’이 이제 눈에 보이도록 열기 띤 사회현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현재 한국의 마라톤 시즌은 봄, 가을에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10월과 11월에는 매주 어느 대회에 참가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정도로 다양한 대회가 개최된다. 한국 최초의 마라톤 대회 ‘춘천 마라톤’과 한국 최대급 대회 ‘JTBC 마라톤’ 역시 그 시기에 개최된다.봄
[칼럼니스트-인세호] 네이버 웹툰 불매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내용을 알아보니, 여성 혐오를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이 신인 만화가의 등용문인 ‘도전 만화’의 1차 심사를 통과한 데 대해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사측에서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아 독자들이 그에 항의하여 불매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또, 불매 운동이 진행되면서 네이버 웹툰의 다른 문제도 파악되었다. 전 세계에 서비스하던 인기 작품에서는 인종 차별이 문제시되어 내용이 수정되었는데, 국내에 서비스되는 웹툰에서는 차별 표현을 그대로 두었다. 15세 관람가, 즉
[칼럼니스트-인세호]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10년 만에 면허증을 갱신하려 하니 세상이 또 변해 있었다. 이제는 건강검진 결과가 문제없다면 인터넷으로 갱신을 신청해서 가까운 경찰서에서 수령하면 된다. 게다가 일부 국가에서 운전할 수 있는 영문면허증까지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일본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사실 이전에도 6개월짜리 국제 면허증을 몇 번 발급받았지만, 아직 일본에서 운전을 해본 적은 없다. 주변 사람들은 이제 다들 자기 차를 가지고 다니는 데 익숙해서 해외에서 운전했다는 이야기도 제법 들린다. 차를 빌려서
[칼럼니스트-인세호] 최근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외부인’을 배제하는 모습을 다루는 기사는 보기 드문 것이 아니다. 택배 차량은 들어오지 말라는 지시에 아파트 정문 앞에 택배를 쌓아두게 되었다는 이야기나, 거주민 외 사람들의 통행을 막기 위해 공공보행통로를 차단했다는 이야기나, 단지 내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을 입주민이 주거침입으로 신고했다는 이야기나, 임대 세대와 분양 세대의 동선을 분리했다는 이야기가 잊을 틈도 없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듯, 여기에서 말하는 지역 커뮤니티가 인정하는 내부인은 주택 소유권을 가
[칼럼니스트-인세호]이전부터 일본 여행을 즐기던 친구들과 만나 ‘시간이 지나니 쇼핑 품목이 달라진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젊을 때는 책이나 영화 혹은 좋아하는 작품의 MD를 사고,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뒤에는 슈퍼마켓에 가서 먹거리나 생활 잡화를 사고, 그 5년 뒤에는 드럭스토어에 가서 파스나 약 종류를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사는 물건이 완전히 바뀌어 이제는 ‘부모님을 위한 물건’을 사게 되었다.이전부터 노후 생활에 관심이 많아 Care Show Japan이나 CareTEX 같은 의료-복지 관련 행사에도 참가했지
[칼럼니스트-인세호] 1인 가구와 자취생 사이에서는 ‘명절에 중고 거래 앱을 살펴보라.’라는 꿀팁이 널리 퍼져있다. 회사에서 명절 선물로 직원들에게 준 스팸 선물 세트를 비교적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찌개에 넣을 수도 있고, 구워 먹을 수도 있고, 전자 레인지에 데워 쌈밥으로 먹을 수도 있는 스팸은, 다인 가족처럼 식재료를 구매할 수 없는 1인 가구에는 마법의 아이템이다. 물론 스팸의 인기가 1인 가구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 한국은 미국에 이어 전 세계 스팸 소비량의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리 한국 전쟁
[칼럼니스트-인세호]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 땅은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아침저녁 몸과 덕 닦는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한국의 학원2024년 8월 23일, 일본의 고시엔 구장에 위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고교 야구 대회 규정에 따라 교토 국제학원의 학생들이 교가를 노래한 것이다.후보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선수가 일본인이라고는 하지만, 100주년을 맞이한 고시엔 구장에서 동해와 한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한국어 노래를 들을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했을까.교토 국제학원의 전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