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동 이야기 Ⅳ ...사우디 아람코 상장 이야기 (1)
[칼럼] 중동 이야기 Ⅳ ...사우디 아람코 상장 이야기 (1)
  • 김선규
  • 승인 2021.02.0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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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와이드-김선규]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중동, 중동 사회,  중동 문화 등 여러가지 주제로 칼럼을 진행해 왔다. 2021년 들어서 새로 연재하는 첫번째 주제는 사우디 아람코 이야기로 진행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사우디 경제의 문제, 중동의 경제 문제 그리고 그들의 관습 등을 이야기하는 과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 '나는 너의 석유가 필요했어' – 사우디 아람코의 탄생

일단 아람코의 상장까지의 이야기를 위해서는 제일 먼저 아람코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야만 한다. 사우디 아람코, 어떻게 보면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먼저 만들어진 나라이기도 하다. 1943년, 쏘칼 (SOCAL, 스탠다드 오일 캘리포니아, 지금의 쉐브론)은 한 남자에게 접근했다. 그의 이름은 압둘아지즈 빈 사우드. 지금의 사우디 왕가의 시조이다.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 (사진:위키피디아 제공)    

이 집안, 알고 보면 한 근성 하는 집안이었다. 오스만 투르크 시절부터 오아시스 약간 말고는 나는 거 하나 없는 사우디 반도를 통일하여 유목민이었던 아랍족들이 이전에 이루었던 아랍 제국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고자 하는 집안이었다.

당시 사우디 반도는 중동판 삼국지 (이 이야기가 재미있다. 나중에 따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하심 가문, 라시드 가문, 그리고 사우드 가문 (말이 좋아 가문이지 사실상 부족이고 족장이라고 해야 된다.) 이 있었다. 그러나 사우드 가문은 일찌기 1800년대부터 반란을 두 번이나 일으켰다 말아먹은 전력이 있었고 그 중 두번째 반란은 라시드 가문의 뒤치기로 다 된 통일을 놓친 뼈아픈 실책이었다.  따라서 이번에 통일시도가 실패하고 말아먹으면 그야말로 가문이 멸문지화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과감했다. 조상의 두 번의 실패를 면밀히 분석한 그는 국제정세를 살폈고 결론을 내렸다. 이전에 외세 때문에 뒤치기를 당했다면, 이번에는 그가 뒤치기를 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당시 영국의 지원을 받던 하심 가문, 즉 후세인 국왕 (지금의 요르단과 이라크 왕국의 혈통)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다른 외세, 미국을 끌어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손을 잡게 된 것이 쏘칼이었고, 그 뒤에 록펠러가 있었으며 그 뒤에 미국 정부가 있게 된 것이다. 

   존 데이빗 록펠러, 1885년(사진: 위키피디아 제공)   

물론 폴 게티라든가 다른 석유 부자들도 사우디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지만, 아람코를 일으킨 것은 바로 록펠러 패거리의 미국 석유자본이었던 것이다. 쏘칼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라고 하고 압둘아지즈의 부족이라고 읽는다)에 채굴권을 사들이고 아람코를 세웠다. 이것이 1933년이었다.  즉 아람코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보다 더 나이가 많은 기업이다.

이후 쏘칼은 아람코를 이용하여 자신의 자본과 기술, 장비를 도입하여 무지막지한 양의 석유를 퍼올렸다. 이후 엑손, 모빌, 텍사코의 3개사가 더 추가되어 (껍데기만 다중 지분이지 사실 이거 다 록펠러 소유다) 지분구조가 약간 변화를 일으킨 거 말고는 사실 사우디아라비아에 돈 들어가는 것은 별로 없었다. 물론 석유 팔아서 나오는 돈으로 사우드 가는 아라비아 반도 통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세웠지만, 그 뿐이었다. 그 후 1970년대 초반까지 사우디는 석유의 이익을 죄다 미국의 석유회사 (의 탈을 쓴 7공주파 (Seven sisters, 국제유가를 조작하던 7대 석유메이저))에게 착취당하던 중이었다.

■ 백인들, 니들만 꿀빠는 걸 볼 수 없다! – 1차 오일쇼크와 국유화

이렇게 석유의 막대한 이익을 미국과 서방국가들에 빼앗기던 사우디, 하루이틀도 아니고 자그마치 30년 이상, 아니 거의 40년을 이렇게 쥐꼬리만큼의 (그 쥐꼬리가 코끼리 꼬리보다 더 큰 건 안 비밀이다) 이익만 먹고 대부분을 빼앗기자 이전의 뒤치기 근성이 다시 발동했다. 비밀리에 다른 아랍권 산유국을 불렀다.
“야, 니들 요새 밥은 먹고 다니냐?”
“아, 밥이야 이전보다는 잘 먹지. 맨날 길가던 애들한테 통행료 받거나 물건 상납 받는 거보다는 훨씬 낫지.”
“야, 근데, 우리 동네 석유 푸는 흰둥이 애들, 정말 재수없지 않냐?”
“뭐가?”
“아니, 우리는 겨우 기름 1배럴에 몇 센트 주고 가져가고, 자기들은 그거를 가지고 몇 달러씩 챙겨 먹으면서 할 거 다하고, 아니 이거 내가 주인 맞냐고.”
“뭐, 그래도 먹고사는 거는 문제가 없잖아.”
“아냐 짜샤! 지금 우리가 먹고사는 거 보다 백배 천배는 더 잘 먹고 있다니깐. 기름은 우리 땅에서 퍼가는 주제에 말이지!”
“아니, 그럼 이야기가 다르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분명히 재협상해야지.”
“거기다 저 꼴보기 싫은 유대인 놈들이 불법점거 (적어도 이들의 입장은 이스라엘은 남의 땅을 불법 점거한 반란군 이였다) 까지 지원하고 있으니 이건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야!”
“맞다 맞다! 흰둥이들 혼내 줘야 된다!”

이리하여 이들 산유국 국왕과 지도자들이 기름값 제대로 받자고 석유 푸는 나라들의 계모임을 만들었으니 이를 OPEC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1974년, 이들은 7공주파에게 당당히 이야기했다. 

“우리는 정당한 기름값을 받고 팔고 싶다. 그게 아니면 우리는 석유를 더 이상 팔지 않겠다.”

그러고는 석유 밸브를 틀어 잠가 버렸다. 그 결과 1차 오일 쇼크가 벌어졌고 당시에 배럴당 2.9달러 하던 석유는 배럴당 55달러(!)까지 치솟았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엄청난 경제 쇼크를 맞았고 그 결과 그들은 원하는 가격에 석유를 팔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번 사우디, 미국에 선언한다.

“야, 니네, 적당히 잘 쳐줄 테니 아람코 지분 내놔. 안 내 놓으면 또 밸브 잠근다”

즉, 국유화 선언을 한 것이다. 공갈은 잘 먹혀들었고 이리하여 아람코는 서서히 지분을 미국에서 사들였다. 그 결과 아람코는 합자회사에서 사우디 국유회사로 전환되기 시작했으며 국유화는 1980년에 완료되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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