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 나라중 진정한 의미의 왕국은 '사우디아라비아' 하나다. 나머지는 그냥 '국가'이지 왕국은 아니다

[컨슈머와이드-감선규]  오늘은 소설, 드라마 혹은 실제 우리 이야기 중에서도 종종 회자되는 중동의 왕국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부다비의 만수르나 킹덤 홀딩스의 회장인 사우디의 알왈리드 빈 탈랄을 비롯한 수많은 오일머니를 휘두르는 왕족들 이야기를 하면서 부러워하기도 하고 질시하기도 한다. 뿐 만 아니라 국내에서 수많은 중동 관련 사기에 반드시 등장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 특히 재미있는 것은 바레인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왕국이라고 칭하여 주변 국가들에게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앞으로도 중동의 왕국과 왕족 이야기는 기회가 되는대로 여러 편에 걸쳐서 조금씩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 중동의 왕국의 구분? '왕국'이냐 '제후국'이냐

사우디아라비아 (사진:코트라)

중동에서 왕국은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오로지 사우디아라비아만이 가진 이름, 즉 '마믈라카 (المملكة) '라고 하는데 이것은 진짜 왕인 말리크 (امملك)가 다스리는 나라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왕국은 사우디아라비아 하나만 있다고 보면 되겠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왕국이라고 자임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번째는 가장 큰 국토와 인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 두번째는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의 별칭이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이며 바로 성지의 수호자로서 자신이 왕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중동권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 명분으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왕가는 요르단 왕가이며, 이들은 이전의 율법을 따르면 이슬람의 칼리프가 될 수 있는 가장 적장자 혈통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다른 주변국에서 자신들이 '말리크'라고 칭하는 나라는 없다. 그랬다가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바로 혼쭐이 난다. 왜냐하면 이슬람권에서 말리크는 바로 성지의 수호자로서의 힘과 명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나라들은 자국의 이름을 '국가(دولة, 다왈랏)'로 부르며 아랍 에미리트같이 연합국의 경우는 국가명 말미에 '토후국 (إمارة, 이마랏)'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우리가 옛적에 중국은 '황제'라 칭하고 우리는 '왕'이라고 하던 것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 다왈랏은 제후 (أمير, 아미르)가 다스리는 곳인데 이들 아미르는 군사령관이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의 수호자로서 싸우는 사령관들을 아미르라고 지명하여 이들이 지역을 다스리게 했는데 이들이 나중에 지역 총독이 된 것이다.

따라서 중동은 왕국과 제후국이 있는 것인데 우리는 그냥 뭉뚱그려서 왕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일단 나라의 구분이 되었으니 실제적으로 중동의 왕족은 사우디 왕족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우디의 경우 왕자들은 자신을 아미르, 공주들은 아미라라고 부른다. 그리고 제후국의 경우, 대외적으로는 아미르라고 칭하지만 자신들끼리 대내적으로는 왕족에게 붙이는 이름은 족장(شيخ, 셰크흐)라고 부른다.

■  '왕국' 이라 자칭하는 바레인

바레인 세계무역센터 (사진: 바레인 세계 무역센터 홈페이지)

이런 국가의 구분은 어느 정도는 지켜지고 있었으나 2002년도에 이것을 깨버린 것이 바레인이었다.

문제는 바레인은 사우디아라비아 동편에 있는 중동권에서 가장 사이즈가 작은 섬나라이며 별로 대단한 가문도 아니었고 주변국에 비하면 경제가 대단한 나라도 아니었는데 스스로 마믈라카, 즉 왕국을 칭한 것이다. 이유가 참으로 황당한데 '입헌군주국을 하기 위해서는 다왈랏으로 하면 면이 서지 않으니 왕국이 되어야겠다'라고 한 것이다. 당연히 주변국들은 코웃음쳤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자신들과 맞먹으려 든다면 바레인 왕실을 비난했지만 오직 오만만은 그냥 넘어갔다. 왜냐하면 오만은 이슬람 칼리프가 세속군주에게 주는 칭호였던 술탄을 사용하여 애초에 절묘하게 이 문제를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이 결정을 밀어붙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미국이었다. 안 그래도 친미 국가였던 바레인이 더욱 미국에 달라붙는 모습을 보여주자 결국 미국이 바레인에 지지를 보내면서 국명을 다왈랏에서 마믈라카로 바꿀 수 있었다.

우리 눈에는 제후국이나 왕국이나 그게 그거지 하는 생각이지만 이슬람권에서는 국가명은 지배층끼리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다. 조선시대에서나 볼 수 있던 국가 호칭에 관한 논쟁이 21세기에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중동지역이 얼마나 명분과 체면에 집착하는 사회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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