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 작가 

[컨슈머와이드-박은주] "아직도 소식 없나?"
"한 달 동안 연락도 없다. 아무리 무료라도 물건 파는 게 참 쉽지 않네."
남편과 나는 한 달 내내 아파트 복도에 덩그러니 주차되어 있는 유아차를 바라보았다. 벌써 한 달째 무료 나눔 스티커를 붙여 중고마켓에 내놓았지만 누구 하나 연락 오는 사람이 없었다. 이달 말까지 유아차가 팔리지 않으면 남편은 분리수거날 돈을 내고 폐기물로 접수하겠다고 했다. 아이의 5살을 함께한 유아차, 검정 색 천에 일곱 색깔 작은 별들이 흩뿌려진, 어찌 보면 시골장터 화려한 꽃문양 몸빼바지의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유치 찬란한 디자인. 단색의 세련된 요즘 유아차들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작년 나는 이 별무늬 유아차를 중고마켓에서 구입했다. 아기일 때부터 탔던 묵직한 유아차를 팔아버렸던 어느 날, 아이와 외출을 앞두고 급하게 경량 유아차를 알아보다가, 중고마켓에서 별무늬 유아차를 발견했다. 디자인이고 색깔이고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 당장 외출해야 했기 때문에, 걸어서 3분 거리에 사는 사람에게서 만 원 주고 덥석 사 왔다. 뭐 이런 걸 사 왔느냐는 남편의 타박과는 달리, 유아차를 탄 아이는 빨간 별도 있고, 노란 별도 있다며 이 유아차에 '우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만 보는 쉬이 걸을 수 있는 5세 아이에게 유아차라니... 맞다. 사실 육아를 해보니, 유아차는 아이보다는 양육자를 위한 것이다. 아이의 보폭에 맞춰 걸으면 하세월이고, 아이가 걷다가 신기한 사물이라도 발견해서 멈추다 보면, 아이와 함께 걸어서 코 앞 마트 가는데도 20분은 족히 걸린다. 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보다 더 길다. 한쪽 손에 식료품을 잔뜩 들고, 다른 한쪽으로 아이 손이라도 잡고 갈 참이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게 스쾃 하는 것보다 힘들다. 두부 2팩, 무 1개, 양배추 한 통, 감자 1kg, 양파 2kg, 사과 2kg를 샀던 어느 날, 아이의 하원길에 유아차 없이 아이와 슈퍼에 들러 돌아오는데, 장바구니를 든 손가락들이 끊어질 듯 아파서 5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쉬었다. 그날 나는 30만 원에 산 신형유아차를 단돈 3만 원에 팔아버린 걸 절절히 후회했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우리 집에 와준 중고유아차 '우주'는 든든한 짐꾼 역할을 해주었다.
 "엄마, 저 우주에 왔어요. 지금 빨간 별한테 인사하고 있어요."
별모양 땡땡이패턴의 햇빛가리개를 손으로 내렸다 올렸다 하며 아이는 우주비행사가 되었고, 그 유치한 디자인이 알아서 아이의 무료함을 달래주었다.

별 속을 유영하는 필자의 아들 (사진 제공 : 박은주 / 출처 : Dall-e 주문제작)

아무리 중고마켓에서 샀더라도, 우리에게 든든한 짐꾼이자 우주를 선사한 이 유아차가 폐기물로 처분될 위기라니... 남편이 폐기물로 '우주'를 접수하기 전에 긴급대책이 필요했다. 어차피 무료 나눔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한 푼의 이익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일 년간 나와 함께 해준 육아동지 '우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무료로 준다는 데 왜 아무도 안 가져가는 것일까? '유아차 나눔'으로 검색해 보니, '우주'가 안 팔린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신품이라면 30만 원을 호가할 브랜드 유아차들이 대거 무료나눔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사 가야 해서 긴급처분합니다. 금주 내 가져가실 분이요."
 "저도 나눔 받았기 때문에 나눔 합니다."
 "연식은 좀 되었지만, 깨끗하게 썼어요. 승차감 좋아요."
 

매우 흔한 유아차 나눔의 글 (사진 제공: 박은주 / 출처 : 당근마켓 캡처)

저출생 시대에 유아차를 탈 아이는 많지 않고,  처분할 유아차는 많아지면서 치열한 유아차 나눔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고마켓의 글만 읽어보아도, 주인들이 한 부피 차지하는 유아차를 얼른 처분하고 싶어 안달 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나눔 경쟁 속에서 '우주'가 돋보이기 위해서는 이제껏 한 번도 관심 가져본 적 없는 '우주'의 실체를 알아야 했다.
 
'우주'의 천을 세척하며 천 한쪽에 붙어있는 로고를 검색해 본 결과, 낡아빠진 '우주' 역시 유아차의 명품회사에서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의 회사였는데, 안전, 혁신 측면에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고 했다. 단, 그 회사의 홈페이지에서 '우주'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여러 차례 검색해 본 결과, '우주'는 2013년 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려 10살이나 먹은 형님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모델은 이미 단종된 지 오래되어 국내 중고마켓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우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정말 폐기물로 접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우주야. 너를 어찌하니... 고민하고 있던 찰나, 문득 언젠가 김영하 작가의 녹화된 강연에서 들었던 서사의 중요성이 떠올랐다.
"이야기의 힘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굉장히 강력합니다."

김영하 작가의 강연 (사진 제공 : 박은주 /출처: 유튜브 캡처)

그렇다. '우주'를 소중히 생각할 다음 주인을 찾기 위해서는, '우주'에게 서사를 부여해야 한다. 지금같이 '유아차 무료 나눔 합니다. 문고리 거래 환영해요.'라는 성의 없는 문구와 함께라면, 우주는 그저 흔한 낡아빠진 유아차에 불과하다. 특별한 그 무엇이 되기를 바라며 나는 우주의 무료 나눔 메시지를 다시 작성해서 올렸고, 기적처럼 1시간도 되지 않아 '우주'의 새 주인이 나타났다. 자신이 꼭 바라던 유아차라며, 괜찮으시다면 자신이 받아도 되겠냐는 매우 상냥한 메시지와 함께였다.

우주에게 부여한 서사는 다음과 같았다.
 제목 : 5세 유아차 (무료 나눔)
 내용 : 유아차 졸업할 나이인 5세에 타기 좋아요. 저희도 중고로 구입해서 5세 내내 잘 탔어요. 바구니도 튼튼해서 짐도 잘 실어주고, T자형 그립이 양육자의 손목을 보호해 줍니다. 검은 천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속에서 아이는 우주인이 되어 매번 행복한 여행을 했답니다. 사용감은 있지만, 안정적으로 잘 몰았어요. 5세 아이의 졸업 유아차로 적극 추천합니다.

유아차 '우주'를 만나러 온 새 주인은 인상이 너무 좋아 보였다. 너무나도 고맙다며, 과자를 선물로 주고는 '우주'를 데리고 떠났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도 떠나는 우주에게 달려와 인사했다.  
 "우주야. 잘 가. 너무 고마웠어. 아기 만나서 또 행복하게 살아!"
 우주에게 앞으로도 행복한 서사가 붙여지길 바라며, 우리는 떠나가는 우주에게 손을 흔들었다.

새주인에게 인계된 유아차 (사진 제공: 박은주) 

 

저작권자 © 가치소비뉴스 컨슈머와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