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은주

[컨슈머와이드-박은주] "이거 봤어? 정말 대박이야."

남편이 퇴근길에 재미있게 보았다며 유튜브를 들이민다. 동영상 속 한국 청년은 열악하기로 악명 높은 인도 기차 꼴등칸에서 배낭을 안고서, 복도까지 가득 찬 승객들 사이에서 사투 중이었다. 이미 승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는 기차에 역마다 사람들이 마구마구 들이찬다. 올라타는 사람이나 기차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이나 숨 쉴 공간조차 없어 보인다. 여행보다는 생존에 가까운 동영상을 보며 남편이 말했다.

"와. 난 절대 못 해. 어떻게 저런 환경을 견디지?"

 

인도 기차 (사진 제공 : 박은주/ HOTPOT.AI 주문제작)

남편은 집돌이 성향의 여행 기피자다. 미지의 세계가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지 내가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EBS '세계테마기행'을 볼 때마다 어떻게 그렇게 재미없는 프로를 보냐고 매번 신기해한다. 여행 다큐는 지루해하는 그가 여행 유튜브를 직접 찾아보다니 의외였다.
남편까지 볼 정도니 여행 유튜브가 대세인가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여행 유튜버가 주요 광고에도 모델로 발탁된 사례가 많다. 불안한 카메라 워킹과 투박한 코멘트의 여행 유튜브는 어떻게 해서 깔끔한 자막과 시사상식, 세련된 영상미가 돋보이는 기존 여행다큐를 이겼을까.

여행 유튜브와 기존 방송사 여행 다큐들은 주제가 여행임에도 전개하는 방식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첫째, 기존 방송사의 여행 다큐는 여행지까지 이동하는 지리한 과정을 과감히 생략한다. 이집트 피라미드가 목적지라면, 거의 바로 이집트 피라미드를 보여주며 그 역사와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반면, 여행 유튜버는 이집트 피라미드까지 가는 과정부터 온갖 고난을 당하기 시작한다. 택시 호객꾼들에게 시달리고, 적절한 대중교통을 찾아 헤매며,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도 입구부터 가이드 호객꾼이 졸졸 따라다니며, 수시로 현지인들에게 함께 사진 찍자는 제의에 시달린다.

피라미드로 향하는 여행유튜버 (사진 제공 :박은주 /출처 : 유튜브 여행하렴 ha_ryum 캡처)

둘째, 기존 방송사의 여행 프로는 이미 현지 정보에 빠삭한 현지 코디네이터가 촬영팀에 합류해 있으므로 현지인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다. 반면, 대부분의 여행 유튜버는 영어 외에는 구사할 수 있는 현지어가 제한적이므로,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많은 좌충우돌을 겪는다.
셋째, 기존 방송사의 여행 프로는 현지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운 에피소드로 가득차있다. 전문 카메라와 현지 코디네이터 때문인지, 촬영팀의 카메라 앞에 선 현지인들은 대부분 호의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여행유튜버의 카메라에 노출된 현지인들은 호의적이고 따뜻한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무례하고 시비를 걸기도 한다.
 
결국 유튜버들의 여행기록에 비하면, 기존 방송사의 여행 다큐는 깨끗하고 정제되어 있다. 여행자가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써 겪어야 할 모든 수난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지인이 무슨 말하는지 못 알아듣는 일이 드물고, 낯선 음식에 배앓이를 하지 않으며, 반바지를 입지 말아야 하는 걸 모르고 사원에서 쫓겨나지 않으며,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잘못 타지도 않고, 호객꾼이나 사기꾼과 마주치지도 않는다. 배낭여행에서 힘들기로 유명한 이집트와 인도조차 기성 방송국의 여행 다큐에는 그저 유서 깊고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이집트 편 갈무리. 모든 등장인물이 카메라에게 친절하고 호의적인 편이다 (사진 제공 : 박은주 /출처 : 걸어서 세계 속으로 유튜브 갈무리)

판타지에 가까운 걸 알면서도 나는 정제된 방송국의 여행다큐를 좋아한다. 쾌적한 집 소파에 앉아,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여행 다큐를 보면서 '아, 정말 멋진 나라네. 나는 절대 갈 수 없겠지만 가본 걸로 치자.'라고 대리만족을 한다. 여행의 많은 위험을 생략한 여행 다큐에서 나는 영상 속 능숙한 가이드를 따라 해당 지역의 분위기와 유적을 만끽할 수 있다.

나와 달리 여행유튜버를 사랑하는 남편은 여행의 피로도가 극대화된 영상을 즐겨보고 있었다. 인도의 꼴등칸에서 하루 버티기,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현지인들에게 둘러싸이기 등 유튜버가 처한 환경이 열악하면 열악할수록 재미있어한다. 영상을 보면서는 기껏 하는 말이 '나는 절대 가지 않을 거야.', '사람이 어떻게 버티지?', '역시 여행은 힘든 거야.'라고 하는 걸로 봐서, 남편은 동영상에 나오는 국가에 가보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그 영상은 남편의 호기심을 끈 걸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남편이 좋아한다는 유튜버의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게 되었다. 
 
"저는 지금 항암치료 중인데 우울할 때 꼭 다시 혼자 여행 가야지 하며 이겨내고 있어요. 재미있는 영상 찍어주셔서 감사해요."
"요즘 이사하느라고 몸살 났는데 OO님 영상 몰아보며 힐링 중입니다❤❤"
"독박육아 중인데 tv 앞에서 편하게 새로운 세상과 역사를 알게 해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유튜브 보는 입원환자 (사진 제공 : 출처 : 박은주 / 출처 : Hotpot.ai 주문제작)

여행은 유튜버가 했을 뿐인데, 영상을 본 구독자들이 진심을 담아 고난의 모험을 하는 유튜버에게 고마워했다. 항암치료 중이어서, 몸살나서, 금전사정이 안 좋아서, 독박육아 중이라서 자신의 생활 반경 외에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유튜버의 여행에 기꺼이 동참한다. 그러고 보니 옴짝달싹 못하기는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집과 직장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며 자신의 유일한 취미였던 드럼도 스스로 놓아버렸다. 퇴근해도 메신저가 꺼지지 않는 직장에 다니며 개인시간조차 가지기 힘든 남편에게 여행 유튜브는 환상 속으로 잠시 진입하는 VR안경이 되어 주었는 지도 모른다.
 
세련되지 않은 촬영기법과 다듬어지지 않은 영상에도 사람들은 여행유튜브에 환호한다. 현지어도 못하고, 여행 예산도 빠듯하고, 현지 인맥도 없지만 낯선 장소에 발을 과감히 디딘 그 사람이 나와 다르다고 느끼지 않는 탓이다. 반복되는 일상의 고단함 속에 사람들은 유튜브를 보며 일상의 무료함을 해소하고, 반대로 영상 속 환경에 비해 자신은 비교적 안전한 장소에 있음에 안도한다.
오늘도 여행 유튜버는 사기꾼들과 싸우고, 위생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길거리 음식을 먹고, 빈대가 있을 수도 있는 저렴한 숙소에 짐을 푼다. 배낭여행이 패키지여행에서 얻을 수 없는 생생한 경험을 주는 것처럼, 여행 유튜버도 구독자들에게 전문가가 이끄는 여행다큐에서 얻을 수 없는 강력한 모험을 선사하며, 삶이 아직도 펄떡펄떡 뛰고 있음을 몸소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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