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 작가

[컨슈머와이드-박은주] "이상! 그리고 박은주는 조회 끝나고 잠깐 교무실로 오도록."

고등학교 아침 조회시간, 담임 선생님의 건조한 말투에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나는 강남 8 학군의 가장 유명한 여고를 다니고 있었다. 의사, 검사, 변호사, 판사, 외교관, 국회의원, 대기업 부장 등이 부모의 직업인 아이들이 많았고, 하교 시 학교 정문에는 아이를 픽업하는 검은 세단들이 줄 지어 대기했다. 정규과정으로 발레도 배웠다. 동대문에서 구입한 토슈즈와 발레복을 입고 "를르베, 플리에"를 외치는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동작을 하고 있노라면 현실감이 매우 떨어졌다. 학교 바로 앞에는 그 시대 최고의 부자들이 입주할 예정이라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통학거리가 가까울수록 부자였는데, 나는 당시 버스로 편도 1시간 30분 걸리는 곳에 살고 있었다.

내가 이 명문에 배정받았을 때, 엄마는 '너는 행운이 늘 따라!'라며 얼마나 기뻐하셨던가. 그런데 정작 이 명문에 다니는 나는 황새 속에 섞인 단 한 마리의 뱁새 같았다.

발레하는 아이들 (사진 출처 : 박은주 Dall-e2 사전제작)

 "어머니가 오늘 교무실에 오셨어. 2분기 학비 내실 형편이 안 되신다고 하시며 펑펑 우시더라. 얼마나 힘들면 그러셨겠니. 그래서 재단이랑 상의해 봤는데, 너에게 도서관 근로장학생을 할 기회를 주려고 한다. 도서관에서 책 정리만 하면 돼. 사서선생님께 말씀드려 놨으니 오늘 점심 먹고 잠깐 도서관에 들르려무나."

당시 분기별 학비는 30만 원이었다. 정말 30만 원도 없을 정도로 우리 집이 그렇게 어려워진 걸까. 황새들 사이에 황새인척 연기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뱁새였다는 걸 한순간에 들켜버린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게 된 이유는 비밀로 해주실 것이라고 강조해 주셨지만,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학생은 학년당 1명이었으므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점심을 먹고 매일마다 부리나케 도서관으로 뛰어가는 나를 친구들은 동아리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인사해 줬지만, 재단에 이야기해서 없는 일자리를 만들어주신 담임선생님과 사서선생님은 늘 나를 동정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근로장학금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정리할 책이 없을 때는 오히려 도서관에 머무르는 시간이 가시방석 같았다. 그때부터 내 몸에는 동정을 감지하는 벌레가 한 마리 생겼다.


대기업에서 일하던 어느 날,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그 벌레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찰칵!"
나는 대기업 회사로고가 크게 박힌 하얀 티셔츠를 입고, 지역아동센터에서 해당 지역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진행 중이었다. 한 달에 고작 한 번뿐이지만, 행사의 모든 내용은 사진으로 기록되었다. 행사의 마지막도 사진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임직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는 일렬로 서서 각자 주먹을 쥐고 파이팅을 외치며 단체사진을 찍었다. 나는 회사의 활동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면서도, 기업 봉사활동의 수혜자가 단기간의 혜택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진에 담기는 게 적정한지 고민했다. 내가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이라면, 이벤트성 선물과 간식을 받았다고 해서, '봉사활동'이 크게 적힌 플래카드를 앞에 두고 처음 보는 어른들과 사진 찍는 게 유쾌할까? 고민했지만, 나는 성실히 사진을 찍었고, 해당 사진들은 며칠 후 사내 포털에 실렸다.

봉사활동 (사진 출처 : 박은주 Dall-e2사전제작)

기업의 ESG활동은 트렌드가 되면서 점차 확대되었다. 내가 퇴사하던 무렵에는, OO인 봉사의 날을 만들어 19개국 6000명의 임직원이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동시에 봉사를 하는 프로그램까지 진행하였다. 봉사의 시작은 임직원들의 티셔츠 사이즈 조사로 시작되었고, 매년 봉사 시작에 앞서 기업 로고가 크게 박힌 새로운 티셔츠가 임직원들에게 배부되었다. 행사당일, VIP 임원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각각의 장소에서 열심히 프로그램화된 봉사활동을 수행하였고, 일부 임직원들은 진행요원으로 참여해 그 현장을 사진으로 담았다. 행사 종료 후 해당 사진들은 기업의 홍보기사로 여러 매체에서 실어주었다.
회사의 ESG활동이 활발해질수록 나의 동정혐오벌레는 꿈틀거렸고, 나는 더 이상 봉사활동의 대상화에 동조할 수 없었다. 나는 점차 일을 핑계로 해당 행사에 불참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주최하는 봉사활동에 다른 임직원들처럼 기쁘게 참여할 수 없었을까? 회사에서 주최하는 봉사활동이 나쁜 활동도 아니고,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꼬였나?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도움받기를 싫어했다고 해서, 기업 봉사활동의 수혜자가 모두 나처럼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른 동료들과 달리, 기업의 선한 ESG활동에서 홀로 비릿한 냄새를 맡는 나 자신이 왜 이럴까 고민하던 어느 날, 드라마현장에서 일하던 친언니에게 전화를 받았다.

"나 청년 유니온 가입했어."

이한빛 PD가 드라마의 착취와 불행의 굴레에 대항하다 자살한 사건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여러 드라마의 스크립터로 일하던 언니에게 들었던 열악한 근무환경들이 이한빛 PD의 가족이 밝힌 내용에 여실히 적혀있었다. 새벽퇴근, 밤샘근무, 촬영스케줄에 밀린 식사, 방송국 갑질...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로 일하는 언니로서는 다음 계약이 되지 않을까 봐, 방송국에 찍힐까 봐, 죽을 듯이 힘들어도 감내해야 했던 근무환경이었다. 관계지향적 일터에서 프리랜서는 최약자였고, 단 한마디도 내지 못하고 열악함을 관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인 방송국에 근무하는 PD가 기형적인 구조를 순응하지 못하고, 프리랜서와 업체에 대한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가슴 아파했다니... 이한빛 PD의 죽음 앞에서 그동안 찍소리 한번 내지 못했던 프리랜서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언론인터뷰를 통해 방송국에 불리한 발언을 하면 다음 자리가 보장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번만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인터뷰 이후 언니는 각자도생 했던 프리랜서의 삶을 되돌아보며 후배들에게도 이런 환경을 물려줄 수 없노라고 생각했고 청년유니온에 가입했다.  

유튜브캡처, 방송국 노동자들의 닷스페이스 인터뷰 (사진 출처 : 유튜브 닷스페이스 캡처 / 박은주 제공)

이한빛 PD의 죽음 이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방송계 노동자들을 보면서, 나는 동정과 연대가 하늘과 땅 차이임을 인지하였다. 이한빛 PD의 소식을 뉴스로 접할 때 많은 사람들이 "아이고, 젊은 청년이 참 안타깝네. 쯧쯧쯧"하며 슬퍼하지만, 정작 그의 죽음을 해석하고 변화를 위해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극소수다. 동정은 대상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시혜적인 감정이라면, 연대는 그의 일이 나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행동에 옮기는 행위이다. 연대 없는 동정은 배경을 이해하는 노력 없이 대상을 그저 '불쌍한 아무개'로 여길 뿐이다.

돌이켜보면 지난날 내 몸에서 꿈틀거리던 그 벌레가 거부했던 건 바로 연대 없는 동정이었다. 학비를 낼 수 없는 학생을 위해 재단과 담임선생님은 도서관 근로장학생이라는 직업을 만들어서 나에게 시혜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그 일을 원하는지, 내 입장은 어떤지 전혀 묻지 않았다. 할 일도 크게 없는 쉬운 일이라면서 오히려 나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고는 그들 마음대로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기업에서 행해졌던 ESG활동은 어떠했는가. 일년에 한번, 많으면 한 달에 한번 기업과 연계된 사회복지시설에 이벤트성 기부와 봉사활동을 했지만, 그것은 그저 기업이 하고 싶은 대로 한 일방적인 시혜행위에 불과했을 뿐이다.

뉴스를 보다 보면 세상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가득하다. 대홍수로 집을 잃고, 폭격으로 사람들이 다치고, 전세사기 당한 사람이 자살을 한다. 아이고, 세상에, 어쩜, 쯧쯧쯧, 안타깝기도 해라. 측은지심이 폭발하려는 순간, 나는 입을 다문다. 정말 그들의 상황이 안타깝다면 내 혀가 쯧쯧쯧 소리를 내서 저 일들이 해결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청년 유니온에 가입했던 언니처럼, 나도 투표로, 소액 후원으로, 탄원서 연명으로 연대를 조금씩 배워간다. 세상에 '불쌍한 아무개'로 취급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잊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에필로그
2021년부터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실시되며, 다행히 저처럼 고교 학비 때문에 고민할 친구들은 없어졌습니다. 단, 학비가 무상지원이 되었다 하더라도, 생활비나 각종 용품 등을 지원받아야 하는 학생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이번 글을 미리 검토해 주신 지인 이정아 님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주셨습니다.

"고등학생이던 은주같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친구들이 지금 이 시대에도 분명 존재할 텐데, 그런 친구들이 자존감을 지키면서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빈부와 상관없이 학생들이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근로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의지를 가진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응할 수 있을텐데요."

찾아보니, 대학생과 달리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근로장학제도는 국내에는 흔치 않았습니다. 물론 일부 장학재단이 학생이 응모할 경우 심사하여 일정 기간 장학금을 지원해 주는 경우는 있었습니다. 청소년 당사자가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찾는 것은 사실 매우 막막합니다. 청소년 개인이 곤궁한 처지에 놓였을 때 바로 떠올릴 수 있게, 청소년들을 위한 복지나 장학제도가 더욱 확대되고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컨슈머와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