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은주

[컨슈머와이드-박은주] 故 "양재수" (집사)님께서 2023-06-08 별세하셨습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용히 진행하므로 조문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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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는 출국을 준비 중이었다. 딸린 가족들이 걱정되었지만, 남은 식구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번에는 흔들릴 수 없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4남매 중 장남이었던 재수는 약수동 양씨 집안의 희망이었다. 공부할 공간 하나 없었지만, 서울의 유명한 대학에 바로 합격했고, 가장 경쟁이 치열하다는 경제학과에 들어갔다. 약수동에서 대학이 있는 회기동까지 버스를 타고, 미국에서 박사 했다는 유명교수의 강의를 듣고, 도서관에서 두꺼운 전공책을 공부하고, 주말이면 산악동아리 학우들과 등산로프 들고 북한산 바위에 오르고, 번듯한 곳에 취직한 졸업생 선배들이 사주는 술을 마시고 있노라면, 출세가 코 앞에 있는 듯했다. 그러나 등록금 고지서는 현실이었고, 결국 재수는 3학년 때 휴학하고 입대해 시간을 벌었다.

군 제대 후 세상은 혼란의 극치였다. 강의실은 종종 비었고, 함께 공부하던 선후배들은 현장으로 나가 시위했다. 하루종일 고기 팔아 등록금을 대주시는 어머니께 죄송하지만, 이 정국에 대학을 졸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 대학을 중퇴했다. 세상에 길은 많았다. 함께 중퇴한 친구가 권해서 시작한 태권도는 몸에 착 들어맞았고, 곧이어 세계태권도연맹이 창설되면서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듣자 하니, 태권도는 이미 세계에서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재수야. 나도 자리 잡았어. 너도 얼른 나와." 먼저 출국해 태권도 사범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친구들에게서 온 전화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태권도 하는 남자 /사진 제공 : 박은주 (Dall-e 2 주문제작)

아직 초등학생인 막둥이 정순이, 이틀에 한 번꼴로 술 쳐 먹는 남동생, 실업자인 아버지를 모두 광장시장에서 일하는 어머니께 맡길 생각을 하니 죄송했지만, 재수는 영국 출국만이 탈출구라고 믿었다. 영국 출국 수속준비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약수동 집에 돌아와 보니 사람이 없었다. 마당에서 서성이는데, 앞집 아줌마가 와서 말했다.  
"재수야. 느그 엄마 쓰러지셨다."
누이가 간경화로 33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지 1년, 시장에서 고기를 팔 때 빼놓고는 매일 울던 어머니가 뇌출혈로 급사하셨다.

재수네가족 첫째줄 왼쪽 상단부터 재수, 재수의 남동생, 일찍 세상을 뜬 재수의 누이,
막둥이 정순이, 재수의 아버지, 재수의 어머니 / 출처 : 양정순, 사진 제공 : 박은주

슬퍼할 새가 없었다. 어머니의 고기 행상이 유일한 양 씨 집안 밥줄이었다. 장례식이 마무리되던 날, 재수는 비행기 티켓을 물리고, 한 번도 잡아보지 않은 정육칼을 들었다. 경제학 배워보겠다고 대학 다니던 시절도, 태권도를 연마하던 시절도, 여행사에 비행기 티켓을 사던 날도 다 꿈만 같았다. 31살, 축산도매업을 막 시작한 재수는 육촌형의 중매로 만난 해연과 1달도 되지 않아 결혼했다. 해연은 곧 임신했지만 사산했다. 천신만고 끝에 살이 뽀얀 예쁜 딸이 태어날 즈음, 소값 파동이 시작되었다. 식당에 납품이 예정되어 있던 고깃값은 선수금으로 받아놨는데, 소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눈물을 머금고 몇 차례나 적자를 견디다 결국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가게를 접었다. 젖먹이를 먹여야 했으므로, 다른 가게에서 일을 도왔지만, 일이 끊기면 한 푼도 벌지 못한 나날이 이어졌다. 서울 가겠다는 희망으로, 아무것도 없는 재수에게 시집왔던 부산 처녀 해연은 그때쯤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이윽고, 재수도 하나님을 받아들였다.


재수는 참으로 말이 없었다. 육촌형은 재수보고 만두라고 했다. 입을 꾹 다문게 속을 도통 들여다볼 수 없다고. 말해서 해결될 것도 아닌데, 입을 열어봤자 무엇이 이득이란 말인가. 젊은 시절 가까이 지냈던 친구들이 해외의 태권도 사범으로 잘 나갈수록, 친구들이 자신을 찾을 수 없도록 재수는 꼭꼭 숨었다. 광장시장에서 장사를 접을 때 친했던 인근 행상들하고도 연락을 끊었다. 마음이 터져버릴 것 같은 때는 아무도 없는 예배실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하나님에게만 조용히 도움을 청했다. 부디 제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기도하는 재수 / 사진 제공 : 박은주 (Dall-e2 주문제작)

열심히 살았지만 살림이 크게 흥한 적은 없었다. 고비가 때때로 찾아왔지만 걱정은 하나님께 모두 드린다 생각하고 살았다. 집은 늘 좁았지만, 재수는 해연과 딸 두 식구만 쳐다보고 살아도 행복했다. 살이 뽀얗게 태어난 딸은 어딜 내보내도 어여쁘다는 소리를 들었다. 고등학교 합창대회에서 청남색 교복을 입고 노래를 하는 딸을 학교강당에서 보았을 때, 재수는 참으로 딸이 기특했지만, 허허하고 웃음만 낼 뿐이었다. 항상 사랑만 가져다주던 딸은 어느새 결혼해 딸처럼 뽀얀 피부를 가진 아기를 낳았다. 천사같이 빛나는 아기였지만, 재수는 허허하고 쓱 쳐다볼 뿐이었다. 혼자 집에 있을 때면, 재수는 손자의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며 허허 웃었다. 이만하면 하나님, 행복한 인생이었습니다.

결혼한 재수의 가족사진 / 출처 : 양정순, 사진 제공 : 박은주

머리가 하얗게 센 재수는 어느덧 80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대에 누운 그는 바짝 말라가는 입을 어렵게 떼서 또박또박 말했다.
"해연아, 나는 가망이 없어."
호스피스 병상 옆에서 기도를 하는 아내가 더 이상 실망하지 않고, 마음 편히 자신의 마지막을 받아들이길 바랐다. 해연의 목소리도, 얼굴도 점차 희미할 때쯤 재수는 일생을 의탁하였던 하나님에게 돌아갔다.

가족장으로 1박 2일 빌린 빈소는 썰렁했다. 4살 배기 손자가 재롱을 피우느라 정신없게 하는 덕분에, 침묵의 공기가 그나마 데워졌다. 든든한 사위가 병원 관계자들과 이야기하며 장례의 복잡한 절차를 하나하나 해결해 갔다. 조금 있으니, 막냇동생 정순이가 식구들을 잔뜩 데려왔고, 일산 사는 자매의 식구도 왔다. 해연이 다니던 교회 사람들이 하나 둘 와서 노래를 불러주니 벌써 밤 8시였다.

재수의 장례식 / 사진 제공 : 박은주

"더 올 사람들 없겠죠?" 딸이 남은 음식의 수량을 체크하며 혼잣말을 할 때쯤, 약수동에 함께 살 때 친했던 육촌 형누나들이 빈소에 도착했다. 50년도 더 못 본 육촌 형들과 누나 모두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재수의 앞에 섰다. "재수야. 이렇게라도 보는구나." 친구도, 지인도, 친척에게서도 꼭꼭 숨어버려 연락도 한번 먼저 하지 못한 재수에게 육촌 형들과 누나는 도리어 그동안 연락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재수를 대신해 육촌 형들과 누나는 막냇동생 정순이를 꼭 껴안았다. "촌수는 좀 멀지만 약수동에서 우리가 얼마나 가까웠냐. 정순아. 내가 아기였던 너를 업었을 때 네가 내 등에 오줌 싼 거 기억하냐? 그때 학교 가다 들러보니 너 소창기저귀가 젖어있어 내가 갈아주고 간 적도 있었다." 60년도 더 된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이야기는 어느새 약수동에서 필동으로, 다시 부산으로, 또다시 북청으로 흘러들어 갔다.

육촌끼리 재회를 하는 눈물겨운 현장 옆에서는, 정순이의 손자와 재수의 손자가 상주의 방석을 모두 빼어다가 방석놀이를 시작했다. "이게 징검다리야. 떨어지면 안 돼!" 6살 된 정순이의 손자가 시범을 보이자, 4살 된 재수의 손자가 따라 방방 뛰었다. 더 이상 올 문상객이 없는 조용한 빈소는 어느새 놀이터와 다름없었다. 까르르 웃는 정순이의 손자는 하도 많이 뛰어서 볼이 벌게졌다. 액자 속 재수 앞에서 외손자와 친손자는 징검다리를 건넜다가, 서로 숨기 놀이를 했다가, 춤도 췄다. "아빠, 손자 재롱 보니까 좋으시죠? 하늘에서도 손자 재롱 보면서 기도 많이 해주세요." 딸이 액자 속 재수를 어루만지며 재수에게 속삭였다.

재수의 장례식에서 뛰어노는 정순이의 손자와 재수의 손자 / 사진 제공 : 박은주

다음날 벽제화장터에서 재수가 한 줌의 재가 되는 사이, 재수의 아내 해연은 재수를 만났던 때를 회상했다. "그때 나는 부산에서 살고 있었거든. 우리 수양엄마가 결혼하면 서울 갈 기회가 있을 거라는 거야. 사람은 괜찮은 듯했고, 무엇보다 서울 가고 싶은 마음이 커서 덥석 하겠다고 했지. 부산에 태종대는 그대로인가? 부산에 다시 가보고 싶네." 해연의 말을 받아, 고향이 마침 부산인 사위가 말했다. "태종대도 영도다리도 그대롭니더. 다음에 우리랑 같이 가보시지예." 해연은 호스피스 병동에 있었을 때보다도 훨씬 덜 피곤했다. 기도로 재수가 하늘나라에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마음이 편했다.

100킬로가 넘는 거구였던 재수는 작은 나무상자에 들어갔다. 육촌 형들과 누나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나무상자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재수야. 니 막냇동생 정순이, 우리가 잘 챙길 테니까 마음 편히 가거라." 뒤에 멀찌감치 서있던 정순이는 문득 재수가 혈육 없이 홀로 남은 자신에게 육촌들을 보내줬다고 생각했다. 갓 말하기 시작한 손자의 작은 손도 나무상자에 닿았다. "할부지, 안녕히 가세요."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재수와 그걸 지켜보는 딸과 손자 / 사진 제공 : 박은주

불이 꺼진 예배실, 빛과 소금이 되길 바라던 젊은 재수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진 걸까. 재수를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은 사랑으로 충만했다. 사람들이 나무상자 속 재수와 작별인사를 하는 사이, 재수의 딸은 고개를 돌려 남편이 두 손으로 들고 있는 재수의 영정사진을 무심코 들여다보았다. 액자 속 재수는 허허 웃고 있었다.

※필자는 재수의 막냇동생 정순이의 둘째 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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