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용 생리대 대신 면생리대 구매 및 사용을 통해 생각해 보는 사지 않아서 느끼는 자유... 물건에 종속되지 않아서 느끼는 해방감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떠올리기 쉽다

작가 박은주

[컨슈머와이드-박은주] 이른 새벽 민박집 뒷산을 홀로 산책하던 나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뚜둑" 생리가 시작되는 소리는 아마 이런 것일 것이다. 민박집까지 어기적어기적 걸으며 챙겨 온 짐들을 뇌로 빠르게 스캔했다. 팬티 3장, 면바지 2개, 치마 1개...  간소해도 너무 간소했던 나머지, 생리대를 챙긴 기억이 없었다.  손님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민박집은 여전히 조용했다. 민박집을 운영하는 80대 할머니를 떠올리니, 이 민박집에서는 생리대가 나올 구멍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민박집이 위치한 곳은 지리산 둘레길 덕산-위태 구간, 그것도 구간의 딱 중간, 산 초입이었다. "이곳은 둘레길 이번 코스 마지막 슈퍼입니다."라는 경고문구가 붙어있는 조그만 슈퍼부터 민박집이 나올 때까지 3시간은 족히 걸었다. 순간 나는 생리대라는 유물은 찾아볼 수 없는 우주에 갇힌 기분이었다.

 

생리대는 없었지만 아름다웠던 지리산 덕산-위태 구간의 어느 새벽 (사진: 박은주)

나이는 허투루 먹은 것이 아니었다. 민박집 화장실 앞에서 멍하니 서있는 몇 초간, 머릿속 짬밥은 기어코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나는 어기적거리며 내 배낭 한편에 메어있는 손수건을 풀어들고 다시 화장실로 기어갔다. 손수건을 접고 또 접고 또 접으니 8겹짜리 천 쪼가리가 완성되었다. 손수건을 덧댄 팬티를 입고는 민박집 할머니가 깨기를 기다렸다.

 나의 몸은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확히 28일 주기로 생리를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생리 주기에 대해서 도가 틀 법도 한데, 어찌나 무관심한지 여태껏 다음 생리를 미리 준비해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은 당황하지 않아도 되는 집에서 생리를 맞이하였고, 밖에 있을 때는 가방 보조주머니든, 편의점이든, 화장실 자판기든 생리대를 얼른 구해서 금방 수습하기 마련이었다.

 "여기는 차가 없지. 콜택시가 있긴 있어. 시내까지는 만 5천 원 정도 들 거야. 아니면 여기 산을 넘어가서 한 1시간 걸으면 슈퍼 있어."
 "아. 네..."

 생리대 때문에 교통비만 왕복 3만 원이라... 아침식사를 마친 나는 배낭에서 손수건을 모두 꺼내보았다. 그렇게 고작 3장의 손수건으로 난생처음 일회용 생리대 없는 생리기간을 보내게 되었다.


생리 때문에 고민을 안 해본 여자는 없을 것이다. 우주의 법칙에 따라 시작하는 생리는 인간에게 시작해도 되냐고 도통 묻지 않는다. 생리를 시작하면 그 누구든 조금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어떤 생리대를 해도 생리혈이 밖으로 묻어 나와 당황하는 경험은 가임기 여자라면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그뿐인가. 생리 전후의 불쾌감과 통증이 있다면 한 달의 3분의 1은 생리로 인해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렵다.

 비용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 매달 사야 하는 생리대는 한팩에는 몇 천 원이지만, 대형, 중형, 소형, 팬티라이너, 날개형 등 종류별로 사려면 만 원은 훌쩍 넘어간다. 통계*에 의하면, 여성은 평생 2275일 동안 1만 5925개의 생리대를 1년에 17만 3940원, 평생 608만 7900원을 내고 사용한다. 즉, 여성은 생리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완경 때까지 600여만 원의 생리대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나 또한 최빈곤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때 생리대를 살 돈이 충분하지 않아, 당장 가지고 있던 소형 생리대 4장으로 버텨보려고 하루 종일 물을 많이 마셔서 생리혈을 대부분 화장실에서 배출해 낸 적이 있다.

생리대 고르는 소녀 (사진 : DALL-E 박은주 주문제작)


 경제적, 신체적 문제도 골치 아픈데, 채식을 시작하고부터 눈감고 싶은 일회용 생리대의 윤리적 문제가 자꾸만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한번 쓰고 버린 500원짜리 생리대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데 얼마나 걸릴까. 생리대를 버린 순간 생리대의 냄새를 떨쳐버릴 수 있지만, 비닐봉지로 싸고 또 싸도 비닐봉지 속 불쾌한 냄새는 세상이 떠안게 됨이 분명했다.
 
 대안이 없는 건 아니었다. 생리컵, 일체형 생리팬티, 그리고 면생리대를 이미 써본 인생 선배님들의 경험담이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양심이 내 발목을 잡던 어느 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어느 자선단체에서 주최하는 '면생리대 만들기'행사에 참여했다. 도안에 맞게 겉감과 속천을 자르고, 서툰 바느질로 꿰매고, 자원활동가가 재봉틀로 마무리해 주어 1시간 만에 만들어낸 면생리대... 그 정도로 고생해서 만들었으면 사용할 법도 한데, 여전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 천 쪼가리가 내 생리혈을 과연 다 받아낼 수 있단 말인가. 생리혈이 넘쳐흘러 바지를 적셔서 식은땀 흘릴테고, 세탁하기 힘들어서 낑낑댈테고... 사용도 해본 적 없으면서 '면생리대를 선택하지 않아야 하는 수십 가지의 상황'을 순식간에 상상해 냈다.

면생리대 만들기 행사 갈무리(저자가 참여한 행사는 아님) / 출처 :https://binzib.net/xe/free/1951476

몇 년이나 면생리대 곁을 맴돌던 나는 우연히 지리산 둘레길에서 어쩔 수 없이 손수건 3장으로 생리기간을 버텨내면서, 드디어 면생리대에 대한 어마어마한 공포감을 버릴 수 있었다.


질질 끌다 결심했지만, 한번 마음을 먹으면 후진을 모르는 나의 특성상, 이왕 면생리대를 샀으면 완벽하게 일회용과 작별하자고 다짐했다.

면생리대를 착용하던 첫날 나는 작은 실수라도 있을까 걱정하며 외출 전 수없이 중얼중얼거렸다. "면생리대 회수용 파우치 넣었고, 면생리대 예비 2장 넣었고... 또... 이게 다인가"

면생리대가 손수건보다 못 할리 없었다. 얇은 면생리대가 그 많은 생리혈을 다 흡수하는 게 신기했지만, 알고 보면 생리대 속천에는 여러 겹의 천이 포개져 있었다. 게다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뽀송함도 찾아왔다. 일회용 생리대의 경우 생리혈을 화학흡수체가 흡수하며 부피가 커지고 무거워지지만, 면생리대는 천이 생리혈을 머금은 채 시간이 지나면 자동건조되기 때문에 늘 가벼웠다. 가장 놀라웠던 건 냄새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본래 피 자체는 별다른 냄새가 없는 것이었다. 지난날 순간순간 나를 습격했던 그 냄새는 생리혈이 일회용 생리대의 화학적 성분과 결합할 때 나는 냄새였던 것이다.

세척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매일 저녁 샤워하면서 발밑에 생리대를 놓고, 흐르는 물에 10번 정도 발로 가볍게 밟으면 웬만한 피는 모두 빠졌다. 얼룩 남은 부분만 세숫비누로 살짝 문지르고 헹군 다음, 수건걸이에 걸면 건조한 화장실 공기 때문인지 다음날이면 바짝 말랐다. 그것마저 못 미더우면 기본 손세척을 끝낸 생리대를 주기적으로 삶거나 세탁기에 돌리면 그만이었다. 아무리 양이 많은 날도 하루에 대형 2장이면 충분했기 때문에(개인차가 있을 수 있음) 결과적으로는 일회용 생리대에 비해 가지고 다녀야 하는 부피도 작다.


 왜 그동안 면생리대가 이렇게 편리한 걸 몰랐을까? 그건 면생리대 광고에 많이 노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형자본이 면생리대 광고를 한다면, 여러 장의 속천이 파란 물감을 순차적으로 흡수하고, 마지막으로 방수천이 생리혈이 팬티까지 도달되지 않도록 하는 CG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주변에 도통 면생리대를 쓰는 사람은 없고, 광고도 거의 안 하니,  면생리대의 진입장벽은 높고 또 높다.

면생리대도 광고가 간헐적으로 있긴 있다 (출처 : 한나패드 영상광고 갈무리)

한때 한국에서 빈곤한 여학생들의 신발깔창 생리대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생리대의 경제적 부담은 선진국인 영국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영국의 빈곤층 소녀들이 양말과 두루마리 휴지로 생리기간을 버티는 게 뉴스로 회자되며, 생리대의 경제적 문제가 한층 부각되었다.

여자아이 한 명이 초경부터 완경까지 부담해야 하는 생리대값은 600여 만 원에 이른다.  먹고사는 걸 제외하고도 생리대만으로 이미 600만 원을 세상에 빚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그건 일회용 생리대로 생리기간을 견딜 때 이야기다.

사지 않아서 느끼는 자유가 있다. 육아만 생각해 보아도 아기가 크면 분유를 사지 않아도 되고, 아이가 화장실을 스스로 가게 되면 기저귀를 사지 않아도 되고, 학교를 졸업하면 문제집을 더 이상 사지 않아도 된다. 물건에 종속되지 않아서 느끼는 해방감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떠올리기 쉽다.
  
매달 일주일씩이나 달고 살아야 하는 일회용 생리기저귀와 작별했을 때 느끼는 감정도 그와 같았다. 시작만 어렵지 막상 해보면 그동안 왜 이리 어렵게 살았나 싶었다. 생리대에도 가난이 찾아오는 시대, 소녀들에게 면생리대나 생리컵 등 빚을 지지 않아도 되는 반영구적 생리대를 알려주면 어떨까? 일회용 생리대를 쓴 기간보다 면생리대를 쓴 기간이 인류역사상 훨씬 길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면생리대가 훨씬 불편할 거라는 건 편견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무얼 선택하든 불편하기는 매한가지다. 일회용 생리대를 쓰려면 매달 생리대를 사기 위해 돈을 벌고, 마트에 들러 물건을 이리저리 살피고, 검은 봉지에 싸서 집에 들이고, 폐기물로 싸서 버려야 한다. 면생리대는 매달 세탁하고 건조해야 한다. 어느 불편함을 고르느냐는 사실 마음에 달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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