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복기사(胡服騎射)'의 지혜... 리더는 필요하다면 구태의연한 관습과 기득권을 뽑아버리는 개혁도 행해야 한다
[컨슈머와이드-이정민] 소통보다는 불통이 만연하는 세상이다. 세대차이, 이념차이, 남녀차이 등 불통의 이유는 다양하다. 불통은 불만을 낳고 불만은 사회부조리를 양산한다. 소통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소통의 방법은 다양한데 애써 찾으려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려는 여유가 없어서다. 모두 자기 주장만 하다 보니 소통이 어렵다. 상하좌우 소통을 잘 하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다. 지금 우리에겐 리더가 없다.
"지금부터 모든 신하와 백성이 오랑캐의 옷을 입고, 말위에서 활을 쏘는 기마술을 도입 하겠소"
조(趙)나라의 무령왕이 단호하게 선언했다. 중신들은 토끼 눈을 뜨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왕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랑캐 옷에 기마술을 써서라도 중산국(中山國)을 차지하고 말겠다는 뜻이오"
무령왕이 단호하게 자신의 말을 재차 확인했다. 그러자 왕의 숙부 겸 원로대신인 공자 성(成)이 나섰다.
“야만적인 오랑캐의 옷을 입는 것은 예의와 법도에 어긋나고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비웃을 것입니다. 관료의 의복에는 신분의 높고 낮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미개한 오랑캐 옷을 입는다면 풍속이 문란해지고 상하간의 위계질서도 무너질 것입니다.”
이번엔 무관을 대표하는 신하가 나섰다.
“중원에서 전쟁을 할 때는 전차를 타고 상대 보병의 대오를 흩트리는 전법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기병 위주의 부대로 바꾸면 날래기는 하나 전체의 힘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현명한 자는 법을 바꾸고 어리석은 자는 법에 얽매인다고 했습니다. 옷이라는 것은 편하게 입고자 하는 것인데 한 가지 복식을 고집할 이유가 있습니까? 병사들이 입는 한복을 보십시오. 발목과 손목까지 길게 늘어진 전통 옷은 말을 부리며 싸움하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오랑캐들이 입는 옷을 보십시오. 소매와 품이 좁은 호복(胡服)은 말을 타고 작전하기가 편리합니다. 또 기동성이 떨어지는 마차전투로는 날랜 기마족 병사들을 제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들의 방식을 받아들여 그들을 제압하자는 것입니다.”
격렬한 논쟁 끝에 무령왕은 중신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다음 날 상징적 제스처로 무령왕 자신과 공자 성이 호복을 입고 조회에 나타났다. 그러자 다른 원로대신들도 뒤따랐다. 병사들도 원래 입던 한복을 벗고 소매와 품이 좁은 호복으로 바꿨다. 동시에 전통적인 마차전을 폐하고 사람이 직접 말을 타고 싸우는 기마술을 채택했다. 무령왕은 손수 오랑캐 바지를 입고 허리띠를 질끈 동여맨 다음 말 위에서 화살을 쏘며 군대를 조련했다. 결국 호복기사 개혁을 성공시킨 무령왕은 중산국을 멸망시키고 천리나 되는 땅을 개척했다. 약소국 조나라가 일약 강국으로 떠오르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호복기사(胡服騎射)'는 구태의연한 관습과 기득권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개혁의 상징이었다. 군신들이 호복을 입는 순간 자신들의 지위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전차 위주의 전투로 경력을 쌓아온 장군들은 기마술을 익히고 신기술을 도입해야 했으니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해야할 상황이었다. 그러니 반대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무령왕은 개혁과 더불어 세대 간 갈등을 잘 조화시켰다. 그는 권력을 가진 최고 통수권자였지만 끊임없이 원로대신과 기득권층을 설득해 나가는 소통의 정치가로 꼽힌다.
㈜한국체험교육센터 대표이사 이정민
- [칼럼] '말(馬)이야기' ..... '준마와 유능한 말잡이가 있어도'
- [칼럼] '말(馬)이야기' ..... 준마(駿馬)위의 미녀
- [칼럼] '말(馬)이야기' ..... '천리마는 실제로 천리를 달릴 수 있나? '
- [칼럼] 말(馬)이야기....'같은 말을 세 번 들으면'
- [칼럼] '말(馬)이야기' ..... '라쇼몽(羅生門) 효과’
- [칼럼] '말(馬)이야기' ..... '너는 나의 임금이 아니다 '
- [칼럼] '말(馬)이야기' .....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
- [칼럼] 말(馬)이야기 .... '흰말은 말이 아니다?'
- [칼럼] '말(馬)이야기' ..... '류현진도 공무원을 꿈꾸었을까'
- [칼럼] 말(馬)이야기... '북방 늙은이의 말(馬)'
- [칼럼] 말(馬)이야기 .... '준마는 늙어도 당나귀와 짝 짓지 않는다 '
- [칼럼] 말(馬)이야기 .... '천리마는 도처에 있으나'
- [칼럼] 말(馬)이야기.... '마차에 멍에목이 없으면'
- [칼럼] 말(馬)이야기 ....망아지를 빼앗긴 멍텅구리 노인
- [칼럼] 말(馬)이야기...'개(犬)나라의 개구멍'
- [칼럼] 말(馬)이야기 .... 꼴불견도 가지가지
- [칼럼] 말(馬)이야기.... 싯다르타의 출가 지켜본 애마 칸타카
- [칼럼] '말(馬)이야기' ..... '말을 메고 간 아버지와 아들'
- [칼럼] '말(馬)이야기' ... '콧대 센 처녀를 사로잡은 돌 주머니'
- [칼럼] '말(馬)이야기' ... '말 수레 열량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니 '
- [칼럼] '말(馬)이야기' ..... '전담 노예에 관직까지 하사한 말 사랑'
- [칼럼] '말(馬)이야기' ... 마상무예 달인의 눈물
- [칼럼] '말(馬)이야기' ... '입시철의 엿과 터부'
- [칼럼] '말(馬)이야기' ... '자본주의는 욕망의 집어등 (集魚燈)'
- [칼럼] '말(馬)이야기' ... '가죽신을 짓는 왕가의 자손'
- [칼럼] '말(馬)이야기' ... '중국사신과 조선 사내의 몸 개그'
- [칼럼] '말(馬)이야기' ... '말을 매는 새끼줄은 말에게 써야한다'
- [칼럼] '말(馬)이야기' ... '마부와 주인과 도적'
- [칼럼] '말(馬)이야기' ... 준마는 지방에서 사람은 강남에서?
- [칼럼] '말(馬)이야기' ... '맹자에게 훈수한 말몰이꾼'
- [칼럼] '말(馬)이야기' ... '스프링 없는 마차는 삐걱 거린다'
- [칼럼] '말(馬)이야기' ... '말 꼬리에 매달린 아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