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말(馬)이야기' ... '말 꼬리에 매달린 아낙네' 
[칼럼] '말(馬)이야기' ... '말 꼬리에 매달린 아낙네' 
  • 이정민
  • 승인 2019.12.30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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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소망성취 되길.... 믿음, 간절함, 실천
(사진:네이버 인물한국사)
(사진:네이버 인물한국사 이지함 캡처/ 위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 연관없음)

[컨슈머와이드-이정민] 한 해가 저물었다. 새해는 항상 희망으로 가득하다. 새해에는 소원성취를 기원한다. 중요한 사실은 소원성취는 거져 얻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희망을 갖되 그에 상응한 최선을 다해야 희망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새해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선조에 어느 집안의 종으로 있던 아낙네가 있었다. 그녀는 성품이 착하고 부지런하여 마을 사람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남편이 병들고 거두어 먹일 아이들은 많아 근심이 끊이질 않았다. 
 어느 날 한 탁발승이 시주를 청하러 왔다. 그러자 아낙은 탁발승에게 곡식을 건네며 푸념을 했다.  
 “나름대로는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저 앞길이 막막합니다.”
그러자 탁발승이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떼었다. 
  "잘 들으시구려. 지금 곧바로 마포 나루터로 가시오. 그곳에 가면 인근에 흙으로 만든 움막이 보일 겁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 움막에 사는 사람을 만나 앞길을 물어보시지요.“

 아낙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움막을 찿아 갔다. 하지만 아무 대꾸도 없었다. 한 시간을 서정이자 한 사내가 움막에서 나오는데 그 모습이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허름한 옷에 큼직한 무쇠솥을 머리에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무쇠솥 사내는 놀란 아낙을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낙은 해가 져 캄캄할 때까지 기다리며 만나줄 것을 눈물로 애원하였다. 밤이 깊어지자 무쇠솥 사내가 나오더니 큰 기침소리와 함께 굵직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내일 아침 동이 트면 큰 나룻배 한 척이 올 것이오. 그 나룻배는 사람과 짐승, 물건을 싣고 한강을 건너는 것이라오. 당신은 나루터의 큰 버드나무 아래에 미리 가서 기다리시오. 그러면 곧 마부가 고삐를 잡은 말을 타고 오는 사람이 보일 것이오. 그러면 그때 지체 없이 달려들어 그 말의 꼬리를 잡으시오. 일단 말 꼬리를 잡게 되면 설사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놓으면 안 되오.”

  아낙이 이른 아침에 나루터 느티나무에 도착하여 기다리니 과연   말을 탄 사람이 종을 거느리고 오고 있었다. 아낙은 다짜고짜 달려가  말꼬리를 감아쥐고 매달렸다. 놀란 말이 날뛰자 마부가 채찍으로 때리고 걷어찼지만 아낙은 말꼬리를 더욱 움켜쥐었다. 말을 탄 사람도 불호령을 내렸지만 막무가내로 꼬리에 매달렸다. 말이 날뛰는 바람에 이리저리 채이고 마부의 채찍에 맞아 목덜미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난리를 피우는 와중에 나룻배는 유유히 떠나버리고 말았다. 미친 아낙 때문에 배를 놓친 말 탄 사람이 혀를 차며 강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강의 중간쯤에 다다른 배가 별안간 돌풍에 휩쓸려 뒤집혀 버리는 게 아닌가. 그로 인해 겨우 헤엄쳐 나온 몇몇 사람만 살아났고 나머지는 모두 강물에 빠져 죽었다. 말에 탄 사람은 정이품의 고관이었다. 그는 말꼬리를 잡은 아낙을 생명의 은인으로 고마워했다. 고관은 아낙의 가족을 불러 종에서 면천을 해주고 집과 토지를 주어 고마움에 답했다.

 옛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土亭秘訣)을 보는 것이 대표적인 풍습이었다. 어떤 이들은 오래된 습속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요즘도 연말연시에는 복을 빌며 신년운세를 점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점집이나 철학관이 여전히 운영되고 젊은이들 중심으로 타로점이 성행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운세사주 유투버’나 ‘타로 유투버’가 유명세를 타기도 하니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나보다.

‘말을 타지 않으면 떨어질 리는 없다’는 격언이 있다. 떨어질 것이 무서워 말을 타지 않는다면 아무런 성취도 없다는 뜻이 담겨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한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위 일화에서 아낙네는 비록 가난하지만 배려하는 품성을 잃지 않았고 탁발승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 그리고는 말 그대로 온몸을 던져 자신의 운명과 맞섰다(중년 여인의 몸으로 말꼬리를 잡고 버티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무엇보다 아낙에게는 절심함이 있었다. 그 절박한 절심함이 탁발승과 무쇠솥 남자에게 전달되었고 운명을 바꾸는 전기가 된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행운은 그 다음의 일이니 처음부터 요행이나 운수 따위에 기대서는 안 된다. 절실함은 운명을 넘어선다. 성공한 이들의 뒤에는 행운보다 절실함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쇠솥 남자는 토정비결로 유명한 이지함이다. 토정은 특히 민초들의 신수와 관상을 봐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했다. 토정 선생의 기운을 빌어 새해, 독자 여러분의 만복을 기원한다.  

 

(주)한국체험교육센터 이정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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