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이란

폴 고갱의 (사진: 인터넷캡처)
고갱의 '백마' ( Le Cheval Blanc , 白馬, 1898년 작) (사진: 인터넷캡처)

[컨슈머와이드-이정민] 한일관계의 악화로 세상이 어수선하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일본차 테러까지 죄 없는 상인과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일본제품을 쓰면 매국노인가. 그러면 도처 산재한 중국산을 쓰는 것은 괜찮은지 묻고 싶다. 사드보복으로 우리기업과 국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중국산 쓰지 말라는 식의 보복은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의 갑질이 화가 나지만 불매운동 같은 얄팍한 행동으로는 감정만 격해진다. 일본제품을 안 쓰는 것이 보복이라는 논리 자체가 궤변이다. 궤변은 계속 억지스런 궤변만 양산한다. 눈꼴사나운 세상이다.  

위나라의 모왕자는 현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특히 재치가 번뜩이는 공손룡이라는 학자를 좋아했다. 사람들은 공손룡을, 헷갈리는 말로 사람을 현혹한다 하여 좋아하지 않았지만 모왕자의 생각은 달랐다. 
하루는 음악을 관장하는 관리가 모왕자가 공손룡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비웃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모왕자는 그 관리를 만나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관리가 대답했다.
  “그는 괴이한 말로 사람을 속이고 현혹하는 궤변론자입니다. 흰 것을 검다고 하고 구부러진 것을 곧다고 하지요. 논쟁으로는 그를 당할 사람이 없지만, 그것은 그의 주장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이 그의 주장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을 들은 모왕자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가 사람을 속인다는 논거를 대 보시오.”
관리가 날름 말을 받더니 공손룡이 궤변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례 네 가지를 제시했다. 그것은 첫째, 마음으로는 알 수 없다. 둘째,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도달할 수 없다. 셋째, 흰 말은 말이 아니다. 넷째, 어미 없는 망아지에게는 어미가 있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례를 열거한 뒤 관리가 말을 덧붙였다.    
“이것은 공손룡이 주장하는 궤변의 일부입니다. 열거 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관리의 말을 들은 모왕자는 관리에게 말했다.
  “공손룡의 말을 궤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엔 그의 말이 어디 하나 틀리지 않고 오히려 다 맞는 것 같습니다. 
첫째, 어떤 것에 대해 마음을 둔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 그 관념이라는 색안경, 즉 고정관념 때문에 그것 자체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으로는 알 수 없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둘째, 모든 것은 늘 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곳을 가리키고 그 가리킨 곳에 도달하려 한다면 가는 동안에 이미 가리켰던 그곳이 변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도달한 곳은 애초에 가리켰던 곳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도달 할 수 없다’는 말은 틀림이 없습니다. 
셋째, ‘희다’는 것은 상태를 일컫는 말이고, ‘말(馬)’이라는 것은 형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흰 말’이라는 것은 색깔이 하얀 특정한 말을 가리키는 것이지 말이라는 형체를 가지고 있는 동물전체를 아우르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흰 말은 말이 아니다’라는 말도 사실입니다. 
넷째, ‘어미 없는 망아지에게는 어미가 있었던 적이 없다’는 말도 또한 틀림이 없습니다. 어미가 있었다면 어미 없는 망아지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어미 없는’이라는 말은 이미 어미가 없다고 한정하고 있습니다. ‘어미 없는 망아지’와 ‘어미 잃은 망아지’는 다릅니다.“ 
모왕자가 일일이 의견을 제시한 다음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의 말은 왜곡된 궤변이 아닙니다. 오히려 갇혀 있는 관념의 울타리를 허물어 버리기 위해 고안된 날카로운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손룡을 비난하던 관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열자>에 실린 위 이야기는 공손룡의 논지가 비록 억지스럽긴 하지만  그의 가르침 중에도 배울 것이 있다는 식으로 일정부분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도가(道家)의 저술가들은 “공손룡은 입으로는 남을 이길 수 있었으나, 사람의 마음을 감복시키지는 못했다.”며 평가 절하한다. 궤변이기 때문이다. 궤변은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따져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말을 이른다. 요즘 궤변이 난무한다. 터무니없이 왜곡된 궤변이 어느 때보다 난무하는 정치판을 바라보노라면, 결국 논리를 짜 맞추는 입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감복시키는 진실성이 승리한다는 단순한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한국체험교육센터 대표이사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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