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말(馬)이야기' ..... 준마(駿馬)위의 미녀
[칼럼] '말(馬)이야기' ..... 준마(駿馬)위의 미녀
  • 이정민
  • 승인 2019.08.26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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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아름다움 이상의 우아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
(사진:인터넷 캡처)
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 고려 말기 화가·정치가인 익재 이제현(李齊賢)이 그린 산수인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사진:인터넷 캡처)

[컨슈머와이드-이정민] ‘말의 아름다운 외모는 인간의 내면을 순화시킨다’ 영국의 처칠수상(Winston Churchil, 1874~1965)이 남긴 명언이다. 말은 고혹적인 동물이다. 말은 아름다움 이상의 우아함을 지녔다는 점에서 여성과 공통의 장점을 가졌다. 그래서 말과 여성은 아름답고 섹시하다는 상징적인 존재로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조선 숙종 때 승지를 지낸 겸재 조태억(趙泰億)이 평양에 머물 때 한 기생과 눈이 맞았다. 유달리 질투가 심한 부인 심씨가 한양에서 그 소식을 듣자 두 눈이 하얗게 뒤집혔다. 그녀는 마부를 부려 마차에 올라타고 평양으로 향했다. 소식을 접한 겸재는 기생에게 달려갔다.
 “부인의 성정은 불과 같으니, 봉변을 당하기 전에 어서 몸을 피하는 것이 좋겠네.” 
 “나리께서는 저 때문에 너무 심려하지 마소서. 대신 한 가지 청이 있사온데, 제가 탈 말과 몇 가지 패물을 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기생은 겸재가 준비해 준 진주와 비취로 화려하게 몸단장을 했다. 그리고 미끈한 말을 골라 털이며 발굽을 깨끗하게 손질하고 길을 떠났다. 그녀는 겸재 부인의 마중 길에 나선 것이다. 
  평양으로 오는 길목, 부인 심씨는 아름다운 풍광에 사로잡혔다. 때는 늦봄이었다. 녹음이 짙어가는 숲과 지천으로 피어난 야생화, 물 흐르는 계곡은 질투에 사로잡힌 심씨의 마음을 풀어놓았다. 숲이 다한 지점으로 파란 강줄기가 유연한 허리를 내밀고, 명주 빛 모래가 하얗게 펼쳐져 있었다. 모래톱 건너편으론 대동문과 을밀대의 누각이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그 때였다. 흰 모래톱 먼발치에 한 점 복사꽃이 아스라이 보이는 가 싶더니 점차 눈 안으로 들어왔다. 복사꽃은 연두저고리에 분홍빛 비단치마를 입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비단 채찍을 가벼이 들고 다소곳이 말 위에 앉아 있었고, 그녀를 태운 준마는 우아한 걸음으로 백사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은어 떼처럼 반짝이는 강 물결이 여인과 준마의 모습을 신비롭게 감쌌다. 부인은 문득 익재가 그린 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를 떠올렸다. 말 탄 이들이 강을 건너는 풍경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그러나 선이 간결한 익재의 그림 속에는 이처럼 몽롱한 기운은 없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안견의 그림에 가까운 풍경이리라. 부인은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오는 말과 여인이 그림 속 자연의 풍경인 양 어른어른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윽고 봄을 품은 말위의 미인이 부인의 가마 앞으로 다가왔다. 하늘거리는 옷자락 가벼이 날리며 긴 소매로 몸을 가리고, 흰 분 바르고 푸른 눈썹 그린 기품 있는 여인의 맵시에 부인은 순간 탄복해 마지않았다. 
  “평양 기생 아무개가 삼가 인사드리옵니다.”
아무개 기생이라는 말에 부인은 어안이 벙벙했다.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고 숨겨진 질투의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부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 네 이년, 감히 어디라고 예까지 나와서 입을 놀리는 게냐.”
 흠칫 놀란 미인이 사뿐히 몸을 틀어 말 옆으로 비켜서더니 옷깃을 여몄다. 부인의 눈 속에 옥으로 빛은 하얀 얼굴, 복숭아 빛의 탐스러운 볼이 들어왔다. 이슬을 머금은 복사꽃이 따로 없었다. 하늘거리는 옷자락이 미인의 맵시를 더하는 듯 했다. 천박함을 찾을 길 없는 격조있는 자태. 설부화용(雪膚花容)이라 했던가. 눈처럼 희고 꽃처럼 고운 얼굴이라더니 천하의 서시와 양귀비가 이와 같을까.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에 부인은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그래서 공연히 두어 번 헛기침을 한 뒤 애써 말했다. 
“그래, 네 나이가 몇이더냐?”
“열여덟이옵니다.”
“내가 직접 너를 보니 함부로 손을 쓸 수 없겠구나. 이처럼 고운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사내라고 할 수도 없겠구나. 영감을 잘 모시되 네게 지나치게 빠져 탈이 생기지 않도록 해라."
부인은 말 수레를 돌려 본집으로 되돌아갔다. 소식을 들은 조태억이 기녀를 불러 물었다.
“네가 어쩌려고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갔더냐?”
새치름한 얼굴로 기녀가 답했다.
“부인의 성정이 아무리 요란한들, 깊은 아름다움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저와 같은 평양의 미녀를 어찌 함부로 대하오리까?” 

< 기인기사록 >에 나오는 일화다. 압도적인 미모를 지닌 여인의 자태는 같은 여자의 마음까지 꼼짝 못하게 한다. 이 일화에서 멋지게 걷는 준마가 여인의 기품을 한층 고양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예로부터 여인의 지극한 자태는 ‘말 위의 여인(馬上女人)’이라고 전해지니 말이다. 


                                 

 

㈜한국체험교육센터 대표이사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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