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말(馬)이야기' ... '마부와 주인과 도적'
[칼럼] '말(馬)이야기' ... '마부와 주인과 도적'
  • 이정민
  • 승인 2019.12.02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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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한해를 되돌아보며 자신을 깊게 성찰해 보는 시간
(사진:위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 관련 없음)

[컨슈머와이드-이정민] 연말이다. 생각지도 못하는 사이 한 해 가 저물었다. 한 달 남은 시간은 올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시간이다. 보통 한 해가 끝나갈 무렵이면 지나간 세월을 떠올린다. 누구나 지난세월에 대한 회환이 있을 것이다. 특히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한 회의와 희망이 교차한다.  뜻밖의 의인을 만났거나 악연을 만난 후회도 생긴다. 애초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면 악연 따위는 피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갖게 되지만 열길 물 속 보다 어두운 것이 사람의 속마음이다. 순박하게 여겼던 사람이 한순간 무지막지한 악한으로 돌변하여 배신하는가 하면, 평범하다싶은 사람이 정의의 투사로 돌변하여 내 앞에 놓인 어려움에 발 벗고 나서주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내가 알던 사람이 악인이 되고 선인이 되는 것은 결국 내 삶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사람들 사이에서 펼쳐 온 과거의 내 언행이 주변사람들을 악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의인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의미다. 크든 작든 악행은 악으로 되돌아오고 덕행은 덕으로 되돌아오니 자신의 언행을 늘 살펴야하겠다.

  권문세가의 사노비였던 마부 윤량은 전주 사람이다. 그가 한번은 주인을 태운 말을 끌면서 차령산맥을 넘고 있는데 날이 저물고 있었다. 서산에 해가 걸려 붉게 물든 황혼에 이르자 그는 말을 채근하여 걸음을 재촉했다. 산모퉁이에 이르렀는데 앞에서 어떤 사람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말총 쓰개를 벗어 던지고 칼을 뽑아들었다. 앞길을 가로막고 칼을 들어 험악한 표정을 짓자 주인은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산골짜기의 한적한 길이니 도움을 청할만한 방도도 없었다. 그 때였다. 별안간 마부 윤량이 큰 소리를 내지르며 주인의 도포자락을 움켜쥐더니 말에서 잡아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를 본 노상강도가 기이하게 여겨 말 탄 양반을 패대기친 연유를 물었다. 마부가 주인의 이마에 자기 엉덩이를 턱하니 깔고 앉더니 대답했다. 
  “이 양반은 마부로 일하는 나의 주인입니다. 이놈이 평소에 내게 한 행동을 보면 말과 돼지라도 저보단 나을 겁니다. 사시사철 하도 저를 채찍질하여 그 고통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습지요.”
마부는 소매를 걷어 깊게 패인 팔의 흉터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랍니다. 틈만 나면 제 집 안방을 드나들며 말을 타듯 제 아내를 희롱하곤 했지요. 그래 그 원한을 갚고자 하였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마부의 엉덩이에 깔린 주인은 숨을 쉬지 못해 발버둥을 쳤다. 강도는 주인과 마부를 번갈아 쳐다보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마부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말 엉덩이 쪽에 보면 작은 괘낭이 걸려있습지요. 그 속에는 진기한 보화가 가득 들어 있는데 모르기는 해도 그걸 팔면 땅마지기께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 산 아래동네에 내가 잘 아는 장물아비가 있으니 이 보화들을 어렵지 않게 처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그 칼을 빌려주십시오. 내가 우선 이놈을 죽여 속 시원히 원수를 갚고, 당신과 함께 이 물건을 처분해 돈을 나누어 가집시다. 보아하니 당신도 나처럼  험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이참에 한번 누리면서 살아봅시다.”
  마부의 말을 들은 도적은 고개를 끄덕이며 칼을 빌려주었다. 마부는 칼을 단단히 잡고 하늘 높이 쳐들었다. 주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질끈 눈을 감았다. 이윽고 칼날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갈랐다. 그러자 한 사람이 고목처럼 푹하고 쓰러졌다. 쓰러진 것은 도적이었다. 죽을 줄로만 알았던 주인은 마부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주)한국체험교육센터 이정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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