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양은미 ((주)마음생각연구소 대표)

[칼럼니스트-양은미] 몇 달 전 비오는 날에 우연히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란 노래를 듣게 되었다. 오래된 노래라서 쉽게 듣기 힘들었는데 날씨 덕분에 오랜만에 들었다. 전주가 흐르니까 바로 머릿속에 노량진 재수학원 근처 허름한 분식집이 떠올랐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어떻게 허름한 분식집을 떠올릴까? 둘 간의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필자만의 기억 조각을 맞춘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 음식, 장소, 향 등을 접하면 예전 경험이 이미지로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경험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경험의 연속이다. 이런 경험들은 복잡한 네트워크의 형태로 머릿속에 남게 된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여러 개의 통로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순간의 경험은 여러 통로를 타고 머릿속 어딘가에 기억되고, 또 필요할 때 여러 통로를 거쳐 꺼내올 수 있다. 만져볼 수 있는 단백질 덩어리인 실체가 있는 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만질 수 없으나 정신세계에 존재하는 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진 제공 : ㈜마음생각연구소)

■ 의식의 섬과 마음속 인프라

인간의 뇌는 전문기능을 담당하는 여러 인지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브로카 영역은 말하는 기능을, 베르니케 영역은 언어를 이해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후두엽은 시각을 담당하고, 전두엽은 실행력을, 측두엽은 단기 기억과 청각을 담당한다. 이외에도 해마, 두정엽 등 인지기능과 관련된 여러 전문 영역이 있다.
각 인지 영역이 서로 협력하여 여러 감각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을 처리하여 사고 흐름과 감정 발생 등 정신 활동을 꾸려나간다. 이렇게 발생한 사고 흐름이나 감정이 머릿속에 저장된 중요한 경험들에 연결되어 하나의 의미를 갖는 ‘의식의 섬’을 형성하게 된다. 경험이 복잡하거나 의미가 클수록 의식의 섬은 더 크고 잘 작동하게 된다. 그 섬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크게 뚫리고 여러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래서 인생에서의 중요한 경험이나 강렬한 경험은 더 쉽게 기억하고 생각나며 개인의 사고의 흐름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 ‘의식의 섬’은 여러 인지기능을 사용하여 아이디어, 이야기, 자아 이미지 등에 관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비 오는 날 이 노래의 전주가 귀에 들려오자 전두엽의 실행기능은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라는 판단을 내린다. 측두엽에는 재수생 시절에 칼국수 집에서 이 노래를 듣던 기억을 가져온다. 후두엽에서는 칼국수 집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이미지를 제공한다. 이런 일련의 신호들이 네트워크를 연결하여 그 시절 비오는 날 칼국수 집에 관한 생각을 재구성하여 떠오르게 한다. 주머니가 가볍고 입이 짧던 필자는 비가 오면 종종 그 칼국수 집에서 카세트테이프로 이 노래를 들으면서 서럽게 칼국수를 먹었고, 꼭 재수에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눈물 젖은 칼국수이다. 그래서 특별하고 강한 경험으로 기억에 남는다. 필자는 지금도 칼국수와 수제비가 정말 좋다.

(사진 제공 : ㈜마음생각연구소)

이렇게 의식의 섬을 만들거나 또 생각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여러 인지 영역 간 정보 소통이 필요하다. 여러 개 의식의 섬을 연결하는 다리와 고속도로 등 뇌 속의 인프라가 필요하다. 이렇게 인지 영역 간의 정보를 연결하는 도로가 촘촘히 있다면 어느 한 도로가 망가져도 다른 우회 도로로 정보가 연결되어 기억해 낼 수 있다. 태어나서 신경세포(neuron)가 생성되어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신경세포가 생성되고 세포자멸사(apoptosis)가 일어나면서 필요한 부분만 남기는 네트워크 가지치기가 일어나면서 뇌는 정교해진다. 어린 시절에 만들어져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네트워크 연결 용량을 ‘뇌 예비능(Brain Reserve)’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질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시절에 ‘뇌 예비능’을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고 손을 놓고 있을 건가? 이제는 생애 전체를 통해 축적되는 네트워크 연결 용량을 말하는 ‘인지 예비능(Cognitive Reserve)’에 관심을 가져보자. ‘인지 예비능’은 인생을 살면서 해온 도전, 경험, 지식 습득, 두뇌 단련 등의 정도에 따라 용량이 달라진다. ‘뇌 예비능’은 어린 시절 생애 초기에 결정되지만 ‘인지 예비능’은 살면서 노력하는 정도에 따라 인생 후반기에도 계속 확장할 수 있다. 

신중년에 이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뇌세포에 손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뇌세포의 손상이 일어났다고 모두가 인지력 감퇴로 인한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뇌 예비능’과 ‘인지 예비능’이 서로 중복으로 연결되어 손상된 부분의 기능을 보완해주고, 또 네트워크 연결 상태를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네트워크가 수천 번 수만 번 반복 연결되어 같은 기억과 아이디어에 서로 다른 경로로 접근할 수 있다. 뇌가 충분한 예비능을 갖추고 있다면 노화로 인해 뇌에 심각한 피해가 오더라도 기억에 접근할 수 있고, 의식의 섬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었으니 ‘뇌 예비능’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제는 노화에도 뇌건강을 지키려면 ‘인지 예비능’을 키워가는 데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뇌를 최적화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머리를 좋게 만들어야 한다. 다음 컬럼에서는 뇌를 최적화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하겠다. 

저작권자 © 컨슈머와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