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마이에서 유명 유튜브 여행 채널의 콘텐츠 촬영을 했다. 가족과 친구들 모두 반대했던 이번 촬영. 단 한명의 친구의 조언으로 도전해 보기로 결정했고, 출연자로 선정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나를 포함 암경험자 3명은 만나자 마자 급격하게 친해졌다.3명의 '암 동지'들은 치앙마이의 가장 높은 산인 도이수텝에 있는 왓프라탑으로 첫 촬영을 하러 갔다. 무더위와 높이와 싸워 도착한 왓프라탑에서 ‘암으로 묶인 언니, 오빠, 동생을 만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신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나의 세상을 바꾸는 힘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 한 명의 친구의 말에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을 딱 한번 시도했다. 그것이 첫 발걸음이 되어 20,30대 암경험자가 모일 수 있는 모임을 열고 소통하고 있다.

그렇게 '하나', 한 사람의 조언, 한 번의 시도로 혼자가 아닌 '우리'가 시작됐다.

작가 문성민
작가 문성민

[컨슈머와이드-문성민] 인도차이나 반도로 배낭여행을 떠나기 2주전, 한 유튜브 촬영 공고문을 발견했다. 암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치앙마이에서 촬영할 출연자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20,30대 암경험자, 일정 등 모든 조건이 나와 딱 맞아 떨어졌지만 일주일을 고민했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영역의 도전이라 두려움이 커서 선뜻 지원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게다가 가족들, 친구들 모두 반대했다. 완성된 영상은 유명 여행 채널에 올라갈 예정인데 그 후 벌어질 일들에 대해 모두가 걱정했다. 타인을 제 방식대로 평가하길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내가 받게 될 상처를 염려한 것이다. 단 한 친구만 제외하고.

“성민아, 해봐. 내 생각에는 정말로 필요한 일인 것 같아. 영상을 보고 위안받을 사람이 분명 있을 거야. 세상을 위한 일에 저항은 존재하니까 반대하는 사람들 입장도 이해돼.”

그렇게 단 한 친구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출국을 일주일 앞둔 날, 출연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뻤다! 그곳에서 3명의 또래 암경험자를 만날 날이 기대돼 설레기까지 했다.

님만해민 골목의 맘에 드는 가게들  (사진 제공 : 문성민)
님만해민 골목의 맘에 드는 가게들  (사진 제공 : 문성민)

어슬렁어슬렁. 치앙마이에 도착한 첫 날, 베짱이처럼 늘어져서 홀로 님만해민 골목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푸르른 나무들이 트렌드 한 공간들과 뒤섞여 골목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까이양과 쏨땀
까이양과 쏨땀

오래 걸어 더위에 지쳐갈 때쯤 어디선가 치킨 냄새가 풍겨왔다. 고민할 새도 없이 식당으로 빨려 들어가 태국식 치킨요리인 까이양과 쏨땀을 주문했다. 까이양이 나오자마자 닭다리를 집어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속살, 그리고 달짝지근한 소스의 맛이 조화로웠다. 얇게 채 썬 파파야와 각종 야채를 피시 소스에 버무린 쏨땀도 치킨 위에 한 젓가락 올려 먹었다. 치킨에 항상 따라오는 무처럼 딱 맞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그렇게 홀로 여유롭고 한가로운 하루를 보냈다.

도이수텝에서 보이는 치앙마이 전경 (사진 제공 : 문성민)
도이수텝에서 보이는 치앙마이 전경 (사진 제공 : 문성민)

다음 날, 치앙마이에 도착한 암경험자 3명을 만나러 갔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암’동지를 만난 반가움을 나눈 후, 치앙마이의 가장 높은 산인 도이수텝으로 첫 촬영을 하러 갔다. 우리의 목적지는 산 중턱에 위치한 왓프라탑이었다. 이곳은 치앙마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경으로 유명한데 야경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푸른 용의 수호를 받으며 왓프라탑으로 올라가던 계단  (사진 제공 : 문성민)
푸른 용의 수호를 받으며 왓프라탑으로 올라가던 계단  (사진 제공 : 문성민)

썽태우를 타고 한참을 달려 사원 입구에 도착했다. 어찌나 덥던지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땅이 지글지글 끓는다. 왓프라탑까지 올라야 할 계단이 300여개…..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는 길은 험난했다. 양 옆으로 푸른 용이 수호하는 계단을 오르다 쉬다 반복했다. 무더위와 높이와 싸운 우리는 사원에 들어서며 감탄했다. 황금빛 첨탑이 하늘을 뾰족하게 찌르고 첨탑 주변으로 세워진 부처상들도 온몸이 황금이었다. 귀한 황금의 몸체는 영험함을 뽐냈다. 신성한 기운이 물씬 났다. 

첨탑 앞에서 해맑은 우리들  (사진 제공 : 문성민)
첨탑 앞에서 해맑은 우리들  (사진 제공 : 문성민)

‘암으로 묶인 언니, 오빠, 동생을 만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에 사로잡혀 발랄한 모습으로 신과 인사를 나눴다. 시련과 선물을 동시에 주신 신께 감사인사를 드린 후 도이수텝에서 내려왔다.

그날 저녁, 타페게이트 근처에 열린 야시장으로 향했다. 촬영 스탭들은 해산물 요리에 어울리는 맥주를 한 잔씩 주문했다. 암경험자들은 마치 자린고비가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놓고 밥을 먹듯이 맥주 한잔을 따라놓고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도 좋았다. 맥주의 거품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지만 우리의 연대감은 점점 커지고 있었으니까.

하나, 한 사람의 조언, 한 번의 시도. 나의 세상을 바꾸는 힘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 한 명의 친구의 말에 용기를 얻은 내가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을 딱 한번 시도했다. 그것이 첫 발걸음이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20,30대 암경험자가 모일 수 있는 모임을 열고 소통하고 있다.

첫 시도 이후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미련하게 애쓰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법을 익혀갔다. 치앙마이에서 같이 여행한 그 3명의 암경험자가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비슷한 경험을 겪었는데 그것이 더군다나 ‘암’이라니.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공감요소이지 않은가.

이날 도이수텝의 하늘에 뜬 구름에 나의 모든 걱정을 두둥실 실어 보냈다. 이들을 만나기 전 나는 혼자였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암환자’라는 별칭을 달고 서로 위안이 될 친구들. 그들과 함께 마주할 세상이 이제는 두렵지 않다. 그들을 만난 곳이 치앙마이라서 더 좋았다. 여유롭고 따뜻해서 무엇이든 품어줄 것 같은 그곳, 치앙마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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