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 홀로 시작하는 여행지로 선택한 베트남 달랏, 첫 날 카메라 분실 소동으로 정신이 나갈 뻔했지만 행복한 기억들이 더 많이 생긴 곳이다. 소박하고 친절한 베트남 사람들 덕분에 채워진 행복한 추억들이다. 달랏은 험난한 삶의 과정을 통과한 나를 위해 신이 예비해 놓은 곳이었다.
[컨슈머와이드-문성민]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헐레벌떡 호텔로 들어갔다. 새로 산 미러리스 카메라를 택시에 놓고 내려 정신이 나가 있었다. 무뚝뚝한 표정의 프론트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 영어를 마구 쏟아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직원이 건넨 물을 마시며 한 숨을 돌리자 차분해졌다. 카메라를 택시에 놓고 내렸는데 택시회사에 전화해서 찾아줄 수 있냐고, 거기에 내 추억들이 다 있다고 직원에게 설명했다. 택시회사와 통화를 마친 직원은 방에 돌아가 있으면 택시기사님이 다시 오신다고 얘기해주었다. 씻고 침대에 누워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카메라를 찾을 거라는 확신은 이미 반쯤 없어졌다. 새 카메라라 장물로 팔면 값어치가 나갈 것이 확실했다.
‘이미 엎질러진 상황인데 어쩌겠어. 앞으로 부주의하지 말자. 카메라는 없어도 핸드폰은 살아있으니 그걸로 감사하자’

마음을 진정시키며 야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둑해진 달랏 야시장에는 털모자, 장갑, 패딩 차림의 베트남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구경했다. 후덥지근한 동남아의 날씨를 상상했지만 예상과는 달랐다. 초겨울과 같은 날씨 탓에 서둘러 야시장을 구경했다.
야시장 입구의 계단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달랏 지역의 음식인 ‘반쨩느엉’을 먹기 위한 줄이었다. 나도 대열에 합류했다. 라이스페이퍼에 소스와 계란을 풀고 햄과 이름 모를 토핑을 올려 구워 주는 베트남식 피자였다. 옆에서 파는 요거트까지 사들고 자리를 잡아 한 입 베어 물었다. 너무 맛있어! 입안에 퍼지는 행복감에 좀전까지 실의에 빠졌던 상황은 잊었다. 바삭하고 짭조름한 맛에 빠져버렸다.

프론트 직원에게 줄 케익을 사서 호텔로 돌아갔다. 나를 보자마자 직원이 카메라를 들고 튀어나왔다. 내 카메라!!! 운행을 마치고 돌아온 택시기사 아저씨가 카메라를 프론트에 맡겨 놓고 가셨던 것이다. 포기했던 카메라를 다시 찾았다. 직원과 나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케익과 카메라를 교환했다. 살았다. 감사합니다!

이튿날 달랏의 가장 높은 곳인 랑비앙 산으로 향했다. 정상까지 지프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데 지프차 매표소까지 거리가 꽤 됐다. 시내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는 말에 정류장으로 갔지만 이미 떠난 후였다. 그때 한 오토바이 택시기사가 다가와 호객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흥정을 해서 가격은 깎았지만 망설여졌다. 7살 때 삼촌의 오토바이를 타본 이후 한번도 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버스까지 30분이 남은 상황. 위험하지 않다는 아저씨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달랏 시내에서 랑비앙 산 입구까지 30분가량 걸리는 거리였다. 낡은 오토바이에 올라타 아저씨의 허리를 꽉 붙잡았다. 떨어지지 않으려 손에 힘을 꽉 주었다. 하지만 걱정보다 괜찮은 승차감에 금세 안도했다.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오토바이와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질주했다. 신났다. 시원한 바람을 타고 매연도 같이 넘어왔지만 그래도 좋았다.
처음 경험해본 짜릿함을 느끼던 중 비가 오기 시작했다. 기사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한 켠에 세우더니 우비를 꺼내 입혀 주셨다. 여러 번 사용한 흔적이 남아 꼬질꼬질했다. 냄새도 났다. 그래도 좋았다. 단순히 승객으로 대우하지 않고 이웃에게 친절을 베푼다는 느낌을 받아서였을까? 마음 한 켠이 따스해졌다. 사람의 정이 그리웠나 보다.

입구에서 지프차를 타고 랑비앙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안개가 잔뜩 낀 랑비앙 산은 곰탕 마냥 뿌예 앞을 내려다볼 수 없었다. 아쉬웠다. 낮은 기온 탓에 춥기도 해서 금방 내려왔다.

달랏의 전경은 죽림사원을 가는 길에 탔던 케이블카에서 만끽했다. 시야를 막는 높은 건물 없이 탁 트인 전경을 보자 마음이 평안해졌다.

죽림사원에는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행복한 부처상’이 있다. 부처상의 배를 만지면 행복한 일이 가득해진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갔다.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다른 부처상들과 달리 행복 부처는 이름 그대로 엄청 행복한 표정이었다. 부처를 따라 웃으면 저절로 행복한 일이 생길 것이라 느껴졌다.
가족들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 홀로 시작하는 여행지로 달랏을 선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달랏에서 만난 베트남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여행객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도 만나는 모두가 친절하기란 드문 일이다. 남은 여정을 혼자 여행할 일이 기대가 되었지만 두려움도 컸다. 첫 날 카메라 분실 소동으로 정신이 나갈 뻔했지만 행복한 기억들이 더 많이 생겼다. 소박하고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채워진 행복한 추억들이다. 유방암 치료 때문에 지인들과의 관계를 차단하며 홀로 보낸 많은 시간들과 결핍된 감정들이 이곳 달랏에서부터 채워지기 시작했다. 달랏은 험난한 삶의 과정을 통과한 나를 위해 신이 예비해 놓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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