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가 넘치는 치앙마이에서 만난 한국인 언니에게 '항암치료 중이냐, 고생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울컥했다. 위안과 실망 섞인 눈물을 흘렸다. 치료 기간의 괴로움을 알아봐 준 것에 대한 위안, 암 환자라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닐 것 같다는 실망. ‘암’에서 자유롭고 싶어서 떠나온 여행인데 자유를 허락 받지 못한 기분이었다. 위로가 된 것과는 별개였다.

하지만 ‘암’이라는 틀에 나를 가뒀던 건 나 자신이었다. 내 몸에 암 덩어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피하고 있었다는 걸 여행이 끝나갈 때 쯤 깨달았다. 암 환자라는 걸 알아본 언니의 말에 실망을 했던 건 약한 사람으로 치부 될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벽을 치고 있는 장애물에서 해방되기로 결심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떠한 모습이든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이제 자유롭다. 

작가 문성민
작가 문성민

[컨슈머와이드-문성민] 치앙마이를 걷다 보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만나게 된다. 천천히 걷다 갑자기 멈춰 낮잠을 청하는 강아지도 많다. 그들은 마치 치앙마이의 정령 같다. 여유가 넘치는 걸음새와 지나가는 행인들을 쳐다보는 무심한 그들의 눈빛 그 자체가 치앙마이다.

치앙마이에서 만난 강아지들 (사진 제공 : 문성민)
치앙마이에서 만난 강아지들 (사진 제공 : 문성민)

이곳에는 한달살기를 하러 온 한국인들이 많았다. 식당에서 거리에서 카페에서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관광을 온 사람들은 바쁘게 여러 곳을 찾아다니는데 한달살기를 하러 온 사람들은 이곳의 주민 마냥 한가롭고 자유롭다. 점점 치앙마이의 강아지 정령과 닮아간다.

치앙마이에서 홀로 보내는 첫 날, 타페게이트에서 쉬고 있었다. 타페게이트는 치앙마이 옛 도시를 감싸던 성곽의 서쪽 문으로 지금은 문과 성벽 일부, 해자만 남아있다. 성벽이 자리하던 네모난 모양의 지형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데 네모의 안쪽은 올드시티로 옛 사원들과 관광지, 게스트하우스 등이 몰려 있다.

타페게이트 앞 (사진 제공 : 문성민)
타페게이트 앞 (사진 제공 : 문성민)

타페게이트에서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중 한국인 모녀를 만났다. 초등학생 딸과 40대 엄마였다. 나보다 10살 많은 엄마에게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들은 비둘기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비둘기에게 소문이 났는지 비둘기가 사방에서 몰려왔다.

“으아악! 언니, 비둘기 무섭지 않으세요?”

“싫어해요. 딸아이가 좋아해서 어쩔 수 없어. 동물만 보면 아이가 너무 좋아해.”

비둘기를 싫어하는 나는 딸을 제지하지 않는 언니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엄마가 되면 아이의 행동까지 사랑하게 되나보다. 세계여행 중인 그들은 몇 주간 치앙마이에 있을 예정인데, 일정과 행선지는 그때그때 마음이 가는 대로 따른다고 했다. 주변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자유로운 그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저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몇 시간 후 선데이 마켓에서 모녀를 다시 만났다. 같이 마켓을 구경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수공예로 만든 지갑, 그림, 꽃모양의 비누, 코끼리 바지 등이 알록달록한 색감의 물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꼬치요리, 팟타이, 초밥 등 저녁거리를 사서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 항암치료 받았어요? 남자친구가 폐암으로 작년에 먼저 떠났어. 머리가 딱 치료 끝나고 자라던 때 같아서.”

 “어떻게 아셨어요? 티 나요?”

 “옆에서 경험한 거라 그게 보여. 고생했어.”

고생했다는 언니의 한 마디에 울컥했다. 눈물의 이유는 복잡하다. 위안과 실망 모두가 섞인 눈물이었다. 치료기간의 괴로움을 알아봐 준 것에 대한 위안, 암환자라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닐 것 같다는 실망. ‘암’에서 자유롭고 싶어서 떠나온 여행에서 자유를 허락 받지 못한 기분이었다. 위로가 된 것과는 별개였다.

재즈바 노스게이트. 아이가 무대 앞에 나가 한참 춤을 췄다  (사진 제공 : 문성민)
재즈바 노스게이트. 아이가 무대 앞에 나가 한참 춤을 췄다  (사진 제공 : 문성민)

그 날 밤 올드시티에서 가장 늦게 불이 꺼지는 재즈바, 노스게이트를 방문했다. 흥겨운 음악과 사람, 자유로움이 있는 이곳의 2층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밴드연주를 즐기는 관객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명당 자리였다. 한창 밴드의 연주가 무르익을 즈음, 한 아이가 무대를 점령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끓어오르는 흥을 발산하며 아이는 온몸을 흔들었다. 아이의 엄마가 몇 번이나 저지하며 데려갔지만 어느 순간 아이는 다시 무대에 올라왔다. 나도 같이 신이 났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부러웠다. 아이의 세상에는 자신과 음악만 있을 뿐 자신을 가두는 내면의 장애물은 그 무엇도 없었다.

인도차이나 반도 여행은 회피에서 시작됐다. 암 환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암’이라는 틀에 나를 가뒀던 건 나 자신이었다. 내 몸에 암 덩어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피하고 있었다는 걸 여행이 끝나갈 때쯤 깨달았다. 암 환자라는 걸 알아본 언니의 말에 실망을 했던 건 약한 사람으로 치부 될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언니는 고생했다는 한 마디만 건넸을 뿐인데 말이다. 

여행 마지막 날 다시 오른 도이수텝에서 (사진 제공 : 문성민)
여행 마지막 날 다시 오른 도이수텝에서 (사진 제공 : 문성민)

나는 내 스스로 벽을 치고 있는 장애물에서 해방되기로 결심했다. 암 환자라는 걸 인정하니 강해 보일 이유가 없어졌다. 받아들인 후 마음 속에 자리잡은 자기비하, 피해의식, 두려움 등의 장애물들이 없어지고 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떠한 모습이든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이제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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