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버리고 그날그날 걸을 수 있는 만큼만 걷는 걸 배우게 된 아차산 등반..나를 진정 사랑하기 시작했다

작가 문성민 
작가 문성민 

[컨슈머와이드-문성민] 지난 2017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3차 항암주사를 맞은 지 5일째 되던 날이었다. 갑자기 아차산을 밟고 싶어졌다. 우리 집에서 정각사 탐방로까지 걸어서 10분밖에 걸리지 않아 아차산에 가는 일은 특별하지 않았다. 가깝고 어렵지 않은 아차산은 어릴 적 우리 가족의 놀이터였다. 간식을 챙겨가 쉬면서 먹던 그 맛은 꿀맛이었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땀을 쭉 뺀 후 먹으면 입안도 기분도 모두 달달해졌다. 

 

 

자주 가던 정각사 산행로 입구   (사진 제공 : 문성민)
자주 가던 정각사 산행로 입구   (사진 제공 : 문성민)

어릴 땐 부모님 성화에 못이겨 억지로 끌려 다니던 아차산 등반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건강한 놀이 중 하나였다. 봄의 새싹과 여름의 푸른 잎, 가을의 울긋불긋한 단풍, 겨울의 앙상한 가지를 보며 자연스레 탄생과 소멸을 경험한 것 같다. 앙증맞게 뽈록 튀어나온 새싹을 보며 귀여워하고, 앙상한 가지를 보며 나무가 느낄 추위를  안쓰러워 했다. 인위적이지 않게, 부담스럽지 않게 간접적으로 자연의 섭리를 알게 된게 아닐까. 덕분에 난 죽음 앞에서 남들 보다 쉽게 담담해진 것 같기도 하다.

산의 정기를 받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학교와 마찬가지로 내가 다닌 초등학교도 '아차산 뻗어내린'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학교 뒷편으로 산과 이어지는 길이 있었는데 간혹 수업시간 중에 올라가기도 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단체기합을 준다며 반 학생 모두를 데리고 산행을 간 적이 있다. 잘못을 저지른 친구보다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그 친구만 벌을 주면 되는데 굳이 전체에게 연대책임을 가하는지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그때를 회상해보면 센스있는 선생님이셨다. 지루한 수업시간에 잘못한 친구를 혼내면 분위기만 무거워질테니 말이다. 씩씩대며 산행을 시작했지만 그 시간은 공식적인 수다시간이 되었고 걷다보면 천진한 웃음소리가 숲을 가득 채웠다. 숲의 청명한 공기와 기운으로 저절로 행복해질걸 미리 내다보신 선생님의 혜안이었다. 

가을의 아차산    (사진 제공 : 문성민)
가을의 아차산    (사진 제공 : 문성민)
겨울의 아차산   (사진 제공 : 문성민)
겨울의 아차산   (사진 제공 : 문성민)

나에게 기합을 주는 선생님은 더 이상 계시지 않는데  왜 그렇게 아차산에 올라가고 싶었을까. 항암치료가 거듭될 수록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었고 하지 못하는 모든 것의 이유는 '항암주사'로 수렴됐다. 호르몬 차단 주사도 같이 병행해 맞았는데 그 때문에 부작용도 심했다. 먹고 싶은게 점점 없어졌지만 억지로 먹어야 했다. 이마저도 소화시키지 못했다. 날마다 곤욕스러웠다. 월급날 마다 선물삼아 사먹던 과일 찹쌀떡이 먹고 싶던 날에는 기운이 나지 않아 사러가지 못했다.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정신없이 괴로운 날들이 많아지니 기운이 날 리 없었다.

"제발 잠이라도 자게 해주세요. 내가 바보같고 쓸모없게 느껴진다구요. 못난 사람처럼 생각하기 싫은데 계속 나를 바닥으로 쳐박는게 너무 하지 않은가요?" 밤새 잠 못들며 서러움에 북받쳐 원망 섞인 기도를 드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듣고 있는지 방관하고 있는지 모를 신이 계신 어딘가를 향해서. 

한참 기도하다 자주 떠마시던  약숫물을 마시면 항암약이 빨리 씻겨내려 갈 거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했다. 달고 깨끗한 그 물을 한 모금만 마시고 싶다는 생각. 이러한 단순한 생각으로 몸상태는 고려하지 않고 올라 가기로 결정해버렸다. 겨울의 앙상한 가지도 보고 싶고 흙을 밟으며 걸어보고도 싶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뭐해? 토요일인데 아차산 가자."

"그 몸으로 어딜 간다 그래?"

"가고 싶어. 너무 답답해. 약숫물 마시고 싶어."

"안돼, 다음주에 가자. 컨디션 올라올 테니까."

"내일 갈래. 안가면 나 혼자라도 갔다올게." 

막무가내로 가겠다는 언니의 억지에 마지못해 동생이 같이 가겠다 승낙했다. 체력보충도 할겸 하산 후에는 갈비를 먹기로 약속하고.  몇 발자국 걸어보고 힘들면 내려오겠다 했지만, 점점 기운이 없어지고 있는게 걱정된다며 제부까지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항상 물을 길러 먹는 형제 약수터   (사진 제공 : 문성민) 
항상 물을 길러 먹는 형제 약수터   (사진 제공 : 문성민) 

그 때 내 꼴은 말이 아니였다. 2차 항암 후 두피를 당겨대는 머리카락 때문에 두통이 심해져 머리를 빡빡 밀었다. 물에 젖어 추욱 늘어진 문어 같았다. 얼마나 안쓰러웠을까. 그래도 웃음을 잃진 않았다. 티비를 보다가, 지나가다가 갑자기 느낌이 좋다며 가족들이 내 머리를 문지르지를 않나.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스님이라며 빵 터져 웃지를 않나. 당하는 나는 어이없지만 가족들이 즐겁다면 나도 즐거웠다. 

항암약 때문에 호중구 수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질 시기이기도 했다. 항암주사를 맞고 나면 일주일간은 반비례 그래프마냥 체력이 떨어진다. 그 상태를 어느 정도 유지하다 또 일주일이 지났을 시점에 체력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한다. 체력 저하의 이유는 약이었지만 몸을 움직일 의지가 있으면 약따위 이겨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이는 오만한 착각이었다. 

토요일이라 출근을 하지 않은 동생, 제부와 같이 출발했다. 약기운을 다 밀어내리라 다짐을 하면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랐다. 세 발자국 갔을까. 잠깐 어지러워 휘청거렸다. 산행로 입구의 촘촘한 계단이 매직아이처럼 흐물흐물해 보였다. '으악 이러다 열발자국도 못 떼고 넘어지겠는걸. 휴우...' 잠시 서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눈 앞의 매직아이가 다시 계단모양으로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입구의 촘촘한 계단 길  (사진 제공 : 문성민)
입구의 촘촘한 계단 길  (사진 제공 : 문성민)

조심조심... 계단을 지나 그렇게 밟고 싶던 흙이 나왔다. 등산화 너머로 느껴지는 흙의 감촉을 천천히 느꼈다.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반가움에 마음이 따뜻해져서인지 땅 속 깊숙한 곳에 배인 따스함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평소보다 2배 느려진 걸음으로 평탄한 길을 천천히 걸었다. 생각의 흐름도 그만큼 느려졌기 때문에 걸음의 속도가 느려진 건 문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걸을 수록 기운이 빠지는게 느껴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추위에 신경써서 옷을 두껍게 챙겨입고 나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허벅지에 힘을 주어 다리를 올려야 하는데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한 발씩 뗄 때마다 다리에 무게가 더해지는 듯 했다. 걷는 것도 맘대로 되지 않는다니 한심하고 괴로웠다.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뒤따라 오던 동생과 제부가 나를 달래며 그만 내려가자 했지만 이것조차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초라해져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포기 해야하나. 걷는 거 별거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된거지?' 나를 자학하는 생각들이 밀물처럼 밀려나왔다. 다음 걸음을 위해 다리를 계속 들어올리는 걸 멈추진 않았다. 짧은 오르막길의 마지막에 벤치가 나왔다. 지쳐 쓰러질 것 같아 휴식이 필요할 때 타이밍 좋게 앉을 수 있었다. 

오르막길 끝, 동생과 앉아 쉬던 벤치   (사진 제공 : 문성민)
오르막길 끝, 동생과 앉아 쉬던 벤치   (사진 제공 : 문성민)

"언니, 내려가서 갈비 먹자. 이쯤 했으면 됐어."

"하아."

"약때문에 못 가는 거 잖아. 억지로 하려고 한다고 될 것 같냐구. 컨디션 올라오면 그때 다시 오자. 그 때는 잘걸을 수 있을거야. 언니가 못 하는게 아니야."

"그래. 여기까지 온 것도 잘 한거지?"

"응. 가자." 

약 앞에 무력한 내가 한심하지만 굳이 확인을 하고 싶었다. 나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하려고 아차산에 이토록 올라가고 싶었나보다. 힘이 빠져 미끄러질까 신경이 곤두 섰기 때문에 내려가는 길도 쉽진 않았다. 체력이며 정신이며 구별할 것 없이, 그때의 내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냈기 때문일까. 하산 후 먹은 갈비 맛은 지금껏 먹었던 그 어떤 갈비보다 맛있었다. 

할 수 있는 만큼 다해서 후회는 없다. 다만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가진 만큼만 이용해도 됐었다. 나를 도구삼아 경험을 해야 부족하다는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미련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 때 왜 그렇게 아차산에 집착했는지 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그 날 이후 무리해서 운동하려는 생각은 버리게 되었다. 욕심을 버리고 그날그날 걸을 수 있는 만큼만 걸었다. 약에 취하면 당연히 집에서 쉬었다. 지치면 거기서 멈추고 내 몸이 해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해야한다는 강박과 집착이 아니라, 해도 된다는 관용과 이해가 마음 속에서 차오르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나에게 먼저 물어보는 습관도 생겼다. "성민아 잘잤니? 기분은 어떠니? 몸이 무겁진 않니?" 이렇게 세심하게 살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최우선의 방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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