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시엠립에서 둘째날, 톤레삽 호수에서 평화로움과 행복함, 위로, 기대를 얻었다.
현지인 아주머니와 그녀의 아이가 함께 탄 쪽배는 평화로움을, 수상가옥 주변에서 크게 웃으며 벌거벗고 수영하는 아이들은 행복을, 아름답고 따뜻한 일몰은 위로와 기대를 내게 주었다.
특히 일몰의 순간엔 마치 모든 것을 품어주는 엄마가 ‘잘 이겨냈어, 잘 견뎌냈어’ 라며 나의 항암치료 중 어려움들을 위로해 주는 듯 했다. 또 눈 앞에 펼쳐진 경이로운 광경에 난 살아있음을감사했다. ‘아,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살아났구나.’
그저 '가슴이 벅찰 정도로 행복하다'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아 정말 좋구나, 살아있어 정말 좋구나.... 

작가 문성민
작가 문성민

[컨슈머와이드-문성민] 호치민에서 캄보디아의 시엠립까지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날아왔다. 전날 여행자거리에서 만난 배낭여행객들과 호치민의 밤을 만끽하며 새벽까지 신나게 놀았더니 피곤해서 캄보디아에서의 첫 날은 여유롭게 지냈다. 호스텔에서 쉬고 펍 스트리트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캄보디아 시엠립의 번화가. 펍 스트리트 (사진 제공 : 문성민)
캄보디아 시엠립의 번화가. 펍 스트리트 (사진 제공 : 문성민)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둘째날, 톤레삽 호수에서 평화로움과 행복함, 위로, 기대를 얻다 _ 아 정말 좋구나, 살아있어 정말 좋구나


 

타프롬 사원. 스펑나무가 사원을 감싸 쥐고 있다
타프롬 사원. 스펑나무가 사원을 감싸 쥐고 있다

다음 날은 투어를 예약해 빡빡한 일정이었다. 오전에는 타프롬 사원을, 오후에는 톤레삽 호수를 가는 코스였다. 한국인 전용으로 짜여진 그룹투어라 설명을 듣기에 좋았다. 한국어 설명이 부족한 유적지가 많은데 모국어로 설명을 들으니 더 재밌었다.

타프롬 사원은 거대한 크기의 스펑 나무가 사원을 집어삼킨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원을 감싸고 있는 나무의 뿌리가 마치 문어의 다리처럼 꽉 쥐고 놓지 않는 것 같았다. 저 나무를 제거하면 사원이 무너질 수 있다하니, 이제는 스펑나무와 사원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이다.

오후 톤레삽 호수 투어에 갈 시간이 되었다. 톤레삽 호수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관통하는 넓고 긴 호수이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크다. 캄보디아 면적의 15%를 이 호수가 차지한다니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는 게 상상될 것이다.

시엠립 시내에서 투어가 시작되는 선착장까지 봉고차를 타고 달렸다. 도로의 흔적이라곤 타이어 자국뿐인 비포장 흙길을 달렸다. 차창 밖으로 흙길이 일으키는 먼지와 그 먼지를 마시고 있는 주민들을 구경했다. 흙길은 캄보디아의 낙후된 현실을 말해주었다.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 중 가장 가난한 나라라고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로 다가왔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 널브러진 쓰레기들, 정비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흙길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캄보디아의 현실이라는 증거였다. 

내가 탔던 쪽배. 일하는 엄마를 따라 나온 아이가 자리를 잡고 누워있다.   (사진 제공 : 문성민)
내가 탔던 쪽배. 일하는 엄마를 따라 나온 아이가 자리를 잡고 누워있다.   (사진 제공 : 문성민)

투어의 첫 행선지는 맹그로브 숲이었다. 현지인인 아주머니께서 노를 젓는 쪽배를 타고 숲을 떠다녔다. 3,4살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의 아이도 같이 배에 올라탔다. 아이는 항상 그랬던 듯 아주머니 뒷자리에 누웠다. 아주머니는 아이를 같이 태워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나는 좋았다. 물길을 가르며 배와 노가 만들어 내는 소리와 아이에게 불러주는 잔잔한 자장가 소리가 합쳐지니 그저 평화로웠다. 건기 때는 맹그로브 나무의 뿌리까지 보일 정도로 물이 마른다고 했다. 우기 때 와서 다행이다. 이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톤레삽 투어 하며 탔던 배   (사진 제공 : 문성민)
톤레삽 투어 하며 탔던 배   (사진 제공 : 문성민)

맹그로브 숲을 지나 큰 배로 갈아탔다. 얼마 가지 않아 수상가옥들이 나타났다. 호수에 기둥을 세워 그 위에 집을 지었다는 게 신기했다. 무너지진 않나? 홍수가 나면 물이 들어 차진 않을까?물이 마르면 집밖으론 어떻게 나오지? 등등 온갖 궁금증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수상가옥 주변으로 아이들이 벌거벗고 호수에서 수영을 하며 놀고 있었다. 꺄르륵 거리는 웃음소리에 행복이 가득했다. 아까 전 '이곳이 참 낙후됐다'며 흉을 봤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곳의 주민들은 충분히 행복한데 감히 내가 그들을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가진 게 많다는 것이 행복의 필수 조건은 아닌데... 오히려 가진 걸 지키려고 애쓰다 보니 행복에서 멀어질지도 모른다. 남과 비교하고 그들을 좇아가야 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내가 불행한 사람이었다. 

일몰 보러 가는 중   (사진 제공 : 문성민)
일몰 보러 가는 중   (사진 제공 : 문성민)

배는 일몰을 보기 위해 호수의 중앙으로 향해 갔다. 톤레삽 호수가 참으로 거대한 호수라는 게 실감났다.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졌다. 마치 바다 같았다. 배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 멈췄고 가이드가 한국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잔잔한 발라드로 일몰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점점 사라져가는 태양   (사진 제공 : 문성민)
점점 사라져가는 태양   (사진 제공 : 문성민)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해가 또렷하게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일몰을 즐기기엔 충분했다. 오히려 구름이 태양을 가려주어 눈부심을 피해 눈을 감지 않아도 되었다. 태양이 점점 수평선 가까이 다가갔다. 태양이 닿는 곳마다 붉게 변했고 멀어지는 곳마다 자기 색을 찾았다. 아름답고 따뜻했다. 힘들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났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엉엉 우는 내 모습에 주변에 있던 관광객들은 의아했겠지만 주체할 수 없었다. 눈 앞에 펼쳐진 경이로운 광경에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살아났구나.’

항암치료를 받으며 경험했던 온갖 어려움들이 태양과 함께 호수 아래로 사라졌다. 이 순간은 마치 모든 것을 품어주는 엄마와 같았다. ‘잘 이겨냈어, 잘 견뎌냈어’라며 귓가에 속삭이며 위로를 해주는 듯 했다.

나는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하다. 산을 걸으며 마음이 치유됐고 그렇게 산을 좋아하게 됐다. 바다와 같은 호수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잔잔해 보이지만 굉장한 자연 안에서 하나가 됐을 때, 나도 자연의 성격을 닮아가는 느낌이다.

좋아하는 것이 하나 더 생긴 멋진 하루였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대자연은 나를 어떻게 성장시켜 줄까? 기대도 된다. 

좋아하는 것도 늘어나고 기대도 생긴 오늘을 그저 '가슴이 벅찰 정도로 행복하다'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아 정말 좋구나, 살아있어 정말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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