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느낀 점은 상황의 흐름에 나를 맡기는 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타야 할 버스가 예정시간 보다 늦게 오거나 아니면 오지 않기도 하고, 길을 걷다 좋아하는 음악에 이끌려 간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결국은 모두 내겐 좋은 경험으로 남는다.

암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나를 받아줄 지 몰라서 두려웠고 숨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과 마주하려 한다. 파도에 몸을 맡긴 서퍼처럼 나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내 인생의 파도에 슬슬 올라타야겠다. 성민아, 흐름에 몸을 맡기자. 그렇게 이런저런 재미를 만나 인생 잘 누려보자꾸나.

작가 문성민
작가 문성민

[컨슈머와이드-문성민] 한 발짝만 걸으면 세계가 바뀌는 곳, 바로 캄보디아와 태국을 잇는 국경이다. 나는 시엠립에서 버스를 타고 방콕까지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위로는 북한, 아래로는 남해로 막혀 우리나라에선 타국으로 육로이동이 불가능한 터라 지금까지는 하늘을 날아 이동을 했어야만 했다. 외국 공항에서 찍어주는 입국허가 도장을 받고 나면 그제서야 다른 나라에 왔다는 실감이 났는데 내 두 발로 걸어서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뭔지 모를 기대감이 차올랐다.

방콕으로 이동하는 날 아침 7시 30분. 호스텔 앞에서 방콕행 버스를 기다렸다. 한 서양인 가족도 나와 같이 버스를 기다렸다. 픽업예정 시간에서 10분이 지났는데 버스는 오지 않고 있었다. 초조해진 나는 서양인 가족에게 말을 걸었다.

 “저랑 같은 버스 기다리고 계세요? 버스가 아직도 오지 않네요.”

 “여기는 캄보디아잖아요. 진정하고 기다려봅시다.”

우리를 태울 버스는 8시가 조금 지나서야 도착했다. 이곳은 정해진대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실제로 마주했을 때는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여유를 갖고 유연하게 생각하자, 성민아. 오늘 안에 방콕에 도착하면 된 거야.’

시엠립에서 방콕까지 대략 9시간이 걸리는 여정이 시작됐다. 처음으로 육로로 국경을 넘는다는 생각에 흥분됐다. 3시간쯤 달려 버스는 국경이 있는 포이펫에 도착했다. 버스에 실어 놓은 배낭을 챙겨 캄보디아 출입국 사무소로 걸어갔다.

캄보디아 출입국사무소 건물 (사진 제공 : 문성민)
캄보디아 출입국사무소 건물 (사진 제공 : 문성민)

출입국사무소 건물은 허름한 단층 건물이었다. 공간이 협소해 소수의 인원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 건물 밖은 어수선했다. 눈치싸움으로 엉켜있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도장을 받아냈다.

태국 출입국사무소 내부 (사진 제공 : 문성민)
태국 출입국사무소 내부 (사진 제공 : 문성민)

태국 입국 도장을 받으러 200미터쯤 걸어갔다. 캄보디아 출입국사무소와 다르게 금칠이 여기저기 덧입혀져 화려했고, 커다랬다. 2층으로 올라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줄을 섰다. 정신없었던 캄보디아 출입국 사무소와 달리 질서정연하게 진행됐다. 그렇게 두 발로 태국에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한참 달리던 버스는 고가도로에 들어선 후엔 천천히 운행하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빌딩과 차들을 보니 방콕에 도착했다는 것이 실감났다.  캄보디아와는 천지 차이였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건물이라곤 간간히 보이는 캄보디아의 도로 풍경과 사뭇 달랐다. 깔끔히 정비된 도로와 우후죽순으로 솟아 있는 고층 빌딩과 전광판들, 방콕은 확연한 대도시였다.

두근두근......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이곳 저곳을 걸어 다니며 넓은 반경으로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데 시엠립에서는 할 수 없었다. 여행자들이 지낼만한 지역은 협소했고 앙코르와트를 3일 동안 관광하고 나니 도심 라이프를 즐기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고 있었다.

카오산로드 근처 람부뜨리로드의 밤 풍경 (사진 제공 : 문성민)
카오산로드 근처 람부뜨리로드의 밤 풍경 (사진 제공 : 문성민)

버스는 배낭여행객의 성지, 카오산로드에 나를 내려줬다. 익숙한 도시의 향기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내 10시간만에 다른 세계에 들어왔다. 하루동안 극과 극의 세계를 체험하고 온 탐험가가 된 기분이었다.

방콕에서 먹었던 다양한 음식들  (사진 제공 : 문성민)
방콕에서 먹었던 다양한 음식들  (사진 제공 : 문성민)

방콕에서의 날들은 아무 생각없이 미친듯이 놀았다. 카오산로드에서는 처음 만난 외국인들과 기차놀이를 하며 밤새 놀았다. 1일5끼를 실천하며 다녔는데도 못 먹고 돌아온 음식이 산더미이다. 팟타이, 똠얌꿍, 로띠, 갈비국수, 팟카파오무쌉, 푸팟퐁커리 등등 미식(美食)의 나라답게 얼마나 먹을 것이 많던지 위가 두 개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밤거리를 거닐다 들어간 라이브바에서.  보컬이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제공 : 문성민)
밤거리를 거닐다 들어간 라이브바에서.  보컬이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제공 : 문성민)

마지막 날 밤, 호치민에서 만난 동생과 방콕에서 다시 보게 됐다. 그녀와 밤거리를 정처 없이 거닐다 익숙한 올드 락 연주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에 이끌려 한 라이브 바에 들어갔다.

“언니, 저는 이런 순간이 너무 좋아요. 우연히 발견한 곳에서 재밌는 걸 만났을 때요.”

모든 것이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간다면 안심은 되겠지만 그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한다면 계획한 대로 시간이 흘러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버스가 예정시간보다 늦게 오거나 아니면 오지 않거나, 길을 걷다 좋아하는 음악에 이끌려 재밌는 곳을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불행한 일이 생길지 행운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이처럼 삶은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결국 모두 내겐 좋은 경험으로 남는다. 

짜오프라야 강가에서 만난 왓아룬 사원 야경 (사진 제공 : 문성민)
짜오프라야 강가에서 만난 왓아룬 사원 야경 (사진 제공 : 문성민)

외국 여행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느낀 점은 상황의 흐름에 나를 맡기는 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해 놓은 대로 짜여진 대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높다. 이러한 환경을 무시 못하는 터라 나 역시도 그러하다. 내 인생의 싹이 트고 자라 나무가 되었고 열매가 맺히려 할 때쯤 나는 암에 걸렸다. 암진단을 받았을 때, 내 인생은 끝났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세상이 나를 받아줄 지 몰라서 두려웠고 숨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과 마주하려 한다. 파도에 몸을 맡긴 서퍼처럼 나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내 인생의 파도에 슬슬 올라타야겠다. 성민아, 흐름에 몸을 맡기자. 그렇게 이런저런 재미를 만나 인생을 잘 누려보자꾸나. 

저작권자 © 컨슈머와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