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들은 병풍처럼 늘어진 하롱베이의 섬들을 배경 삼아 테라스에 자리 잡고 앉아 그간 힘들었던 기억들을 반추하며 서로를 위로했다.....힘들었던 항암치료 기간을 포함 지금까지 긍정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며 버틸 수 있던 힘은 모두 가족에게서 왔다. 아프고 힘든 시간에도 농담을 건네며 웃으면서 지나게 해준 우리 가족을 나는 사랑한다.

작가 문성민
작가 문성민

[컨슈머와이드-문성민] 감당하기 어려운 큰 일을 치르고 나면 휴식을 위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가족 또한 마찬가지였다. 2010년 갑작스레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몇 년간 예기치 못한 불행들이 연속적으로 터졌다. 원하는 일이 진정 무엇인지 고민해 볼 시간은 나에겐 사치였다. 돈을 버는 수단으로 직업을 택했고 마음 속에서 하는 얘기들을 억누른 채 일만 했다. 그런 나와 우리 가족에게 여행은 탈출구였다.

여유롭지 않은 일상 중 예정된 여행을 기대하는 것은 내게 활력소가 되었다. 첫 취업 후 매년 해외로 가족여행을 갔었는데 이번 여행은 특별했다. 생각지도 못한 어린 나이에 암진단을 받게 된 나의 치료과정을 옆에서 함께 버텨준 가족들에게 보답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하롱베이의 옹기종기 모여 떠있는 신기한 섬들   (사진 제공 : 문성민)
하롱베이의 옹기종기 모여 떠있는 신기한 섬들   (사진 제공 : 문성민)

여행 2년 전 어느 날, TV에서 하롱베이(Ha Long Bay)를 소개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거제도의 아름다운 한려수도 풍경을 어릴 적 놀이터 삼아 자랐던 엄마는 항상 바다를 그리워하셨다. 결혼 후 도시에 정착해 지금까지 살아오신 터라 바다 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성민아, 엄마는 다른 데 보다 하롱베이에 가고 싶어.”

“엄마, 저기보다 거제도가 더 멋있어 보이는데?”

“아니야. 물 위에 떠 있는 섬들을 봐. 얼마나 멋있니?. 다음 여행은 꼭 하롱베이로 가자.”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엄마의 바람과는 다르게 오사카로 다음 여행을 가게 되었다. 유방암 수술을 열흘 앞두고 먼 곳으로 여행가는 것이 두려워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로부터 1년 후, 엄마가 그토록 가고 싶어한 하롱베이를 드디어 가게 되었다.

 하롱베이로 가는 리무진을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하노이에서 편도 4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기대는 오래 걸린 시간만큼 커져 있었다. 보통 하롱베이 여행하면 크루즈 위에서 여행을 하게 된다. 우리가 탄 크루즈는 1박 2일 코스로 쿠킹클래스, 디너쇼 등 배 안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과 하롱베이의 관광지에 정박해 관광하는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 탔던 크루즈   (사진 제공 : 문성민)
우리가 탔던 크루즈   (사진 제공 : 문성민)

한참을 달려 크루즈에 올라탔다. 우리나라 바다의 거친 파도를 상상하며 뱃멀미를 걱정했는데 파도 없이 잔잔했다. 우기라 비가 오고 있음에도 차분히 순항했다. 얼마간의 휴식시간 후 하롱베이의 가장 큰 석회암 동굴인 승솟동굴 앞에 배가 정박했다. 우리나라의 동굴과 다르게 후덥지근했다. 우비를 입고 있어 습한 기운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거대한 승솟동굴. 오묘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사진 제공 : 문성민)
거대한 승솟동굴. 오묘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사진 제공 : 문성민)
승솟동굴 안에서 한 컷   (사진 제공 : 문성민)
승솟동굴 안에서 한 컷   (사진 제공 : 문성민)

 “우와! 동굴이 이렇게 커?”

 “엄마 저기 봐! 신기하게 생겼어!”

 “천장이며 바닥이며. 사람은 이렇게 못 만들겠어. 너무 멋지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오묘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자연이 만들어낸 놀라운 모습들을 볼 때면 그것의 존재 이유 대해 생각하곤 한다. 이유가 따로 있을까. 개연성을 따지려 파고들다 보면 정답은 없더라. ‘그냥’ 그곳에 존재했고 우리는 ‘그냥’ 즐기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크루즈 내 쿠킹클래스에도 참여했다  (사진 제공 : 문성민)
크루즈 내 쿠킹클래스에도 참여했다  (사진 제공 : 문성민)
티톱 섬의 해변   (사진 제공 : 문성민)
티톱 섬의 해변   (사진 제공 : 문성민)

크루즈의 일정은 분주하게 돌아갔다. 승솟동굴 관광을 마치고 바로 스프링롤을 만드는 쿠킹클래스가 열렸다. 코스로 나오는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기진맥진이었다. 하롱베이까지 장거리를 이동했더니 피로가 몰려왔다. 다음 날 일정도 빡빡했는데 하노이로 돌아가기 전까지 티톱섬 관광과 카약을 타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 하룻밤을 보낼 날이 또 오려나.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병풍처럼 늘어진 하롱베이의 섬들을 배경삼아 테라스에 자리 잡고 앉아 그간 힘들었던 기억들을 반추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항암치료 기간동안 독한 약 때문에 몸과 마음이 약해져 가족들에게 예민하게 굴었다. 짜증을 내고 돌아서면 후회를 할 걸 알면서도 모진 말이 쏟아져 나올 때가 있었다. 편한 사이라는 말에 덧씌워진 나의 선을 넘는 행동이 용인됐던 건 모두 가족들이 감내했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에게 더 상처를 줄 수 없었을 테니까. 지금까지 긍정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며 버틸 수 있던 힘도 모두 가족에게서 나왔다. 아프고 힘든 시간에도 농담을 건네며 웃으면서 지나게 해준 우리 가족을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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