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양은미_(주)마음생각연구소 대표
칼럼니스트 양은미_(주)마음생각연구소 대표

[칼럼니스트-양은미]  유명 작가라면 모를까 일반 작가가 대형서점에서 사인회를 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나 그만큼 큰 부담이다. 필자는 그동안 책은 많이 출간했지만, 저자사인회를 열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첫 사인회를 연다는 설렘은 하루도 못 가고, 이후 걱정에 시달렸다.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아서 휑한 공간에 나 혼자 검정 사인펜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으로 여러 날을 보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사인회가 내리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행사에 비가 오면 오는 사람이 줄어들까봐 행사 주최 측은 걱정이 많아진다. 그런데 정작 사인회 주인공인 필자는 슬쩍 안도감을 내쉬었다. “그래, 오고 싶어도 이렇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오기 싫어지지. 날씨 때문에 오겠어?”라며 사람이 적게 올까봐 걱정하는 마음을 잠재울 수 있었다. 막상 사인회가 시작되니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와줬다. 그들도 날씨 때문에 사람이 못 갈 거라는 생각에 나를 위해 어려운 걸음을 했을 것 같다. 그렇게 나의 합리화와 지인들의 사려 깊은 배려로 인생 첫 사인회를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했다. 

 얼마전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에서 열린 필자의  저자사인회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얼마전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에서 열린 필자의  저자사인회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누구나 마음의 방패를 갖고 산다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겪는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 걱정, 외로움, 경제 문제, 가족 문제처럼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도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삶에서 스트레스와 불안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마음이 쉽게 지치지만, 다행히 우리 마음에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려는 장치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방어기제(防御機製)라고 부른다. 한자를 그대로 풀면 ‘방어(防御), 막아내어 지키다'와 '기제(機製), 어떤 일을 이루는 데에 쓰이는 방법이나 체제, 또는 그 메커니즘'이 합쳐진 단어이다. 쉽게 말해, 상처를 덜 받도록 해주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방패이다. 누구나 마음의 방패를 몇 개씩 갖고 산다.

머리가 아픈 것보다 마음이 아픈 게 더 힘들다.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을 먹으면 아픔이 가신다. 그런데 마음이 아픈 경우는 마음이 아무는 데 시간이 걸리고 방법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마음은 조심스럽게 보호해야 한다. 처음에는 다친 마음이 별로 티도 안 나지만 계속 상처 위에 상처가 덮어져 덧나게 되면 마음은 되돌리기 힘든 병을 얻게 된다. 더 방치하면 세상살기 싫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은 어릴 때부터 자기 마음을 보호하려는 습관과 태도인 마음의 방패, 방어기제를 갖게 된다. 

형제자매, 친구들, 주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면서 자기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방어기제를 적절히 사용하면 삶에 도움이 되겠지만, 습관적으로 부주의하게 방어기제를 자주 사용하면 풍요로운 삶을 가꾸는데 발목을 잡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거운 갑옷을 입고 방패로 무장하고 사람들 사이를 뻣뻣이 걸어가는 자신을 상상해 보라. 나도 모르게 옆 사람을 부딪쳐 불편함을 줄 수 있고 저 앞에 타고 싶은 버스가 있어도 달려가 잡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마음의 방패를 너무 많이 사용하면 융통성이 사라지고 새로운 경험이나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 어렵다. 그래서 대인관계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한다. 

방어기제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약속에 늦었을 때 “길이 밀리네, 다른 사람도 늦겠지. 뭐!”하며 자기 합리화로 불안한 마음을 위로하고, 밖에서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괜히 집에 와서 만만한 동생에게 트집을 잡아 화풀이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불편한 마음을 피하려고 수시로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거나 위안 삼을 만한 일을 한다. 방어기제를 자꾸 사용하면 마음의 습관이 된다. 습관에도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이 있듯이 방어기제도 건강한 방어기제도 있고 미성숙한 방어기제도 있다. 방어기제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든든한 방패가 될 수도, 사회 적응을 막는 방패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방패를 현실을 피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회복하는 데 쓰는 것이다. 오늘 하루, 당신은 어떤 방패를 들고 있었나? 잠시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소통하며 살아가는 행복한 삶을 열어줄 것이다. 앞으로 방어기제를 하나씩 알아가며 마음의 습관을 반짝반짝 함께 닦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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