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인세호 (채문사 대표)
칼럼니스트 인세호 (채문사 대표)

[칼럼니스트-인세호] 도시의 사람들은 밖에 나왔을 때 지치면 어디에서 쉬는가? 통행인에게 물어본다면 십중 팔구는 ‘카페’라고 대답할 것이다. 커피 등 음료를 중심으로 하여 간단한 먹거리도 취급하는 외식 공간을 ‘카페’라고 정의한다면, 눈이 닿는 곳마다 카페가 있다. 스타벅스를 지나면 투썸플레이스, 그 옆에 이디야, 그 옆에 커피빈, 할리스, 메가커피, 컴포즈커피, 파스쿠찌… 프랜차이즈만 열거해도 끝이 없다.

국세 통계 포털에 따르면 전국 커피․음료점(이하 커피점)은 2023년 1월 기준 93,414개, 서울시 상권분석 데이터에 의하면 서울 시내의 커피점은 2022년 6월 말 기준 2만 5,224개에 달하고 한국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세계 평균보다 3배 많다고 한다. (2018년 기준, 현대경제연구원)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이 유독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커피숍이 많은 것일까?

그것을 부정할 근거는 없지만, ‘카페’가 커피점이 아닌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커피점’의 부류는 아니지만 카페라는 이름을 붙인 점포를 들여다보자. 예를 들면 북카페, 낚시 카페, 양궁 카페, 방 탈출 카페, 키즈 카페는 책과 함께 휴식할 수 있는 공간, 낚시/양궁/방 탈출을 즐길 수 있는 공간, 아이와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사례를 볼 때 결국 카페의 상품은 유형 재화보다는 공간 경험이고, 카페는 ‘(식사 이외의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2023년에 일본 통계국에서 발표한 경제 센서스 기초조사 결과에서는 2021년 기준 전국 58,669개의 찻집 중 10%인 6,121개가 도쿄 도내에 있다고 발표했다. 카페를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인 노래방(8,190개), 패밀리 레스토랑(6,770개), 패스트푸드점(5,470개)을 합쳐도 약 8만 개. 한국의 커피점보다 적은 숫자다. 물론 한국의 커피점 통계에는 테이크아웃 점포가 포함되므로 실제로는 일본의 점포 수가 많을지도 모르나, 2021년 기준 일본의 인구는 한국의 2배가 넘는 1억 2천만 명이니 인구수 대비로는 18만 개쯤 되어야 비율이 맞는다.

그럼 카페도 충분치 않은 일본 사람들은 어디에서 시간을 보낼까. 일본에는 카페나 그에 준하는 서비스 시설 외에도 가볍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있다. 바로 도시공원이다. 서울에서 길을 걷다 보면 카페가 눈에 들어오듯, 일본의 거리를 걷다 보면 뜬금없이 작은 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원은 정부가 관리하는 공공시설이기 때문에 누구나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굳이 상업 시설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도쿄 이타바시구의 ‘미츠기 공원’(사진 제공 : 인세호)
도쿄 이타바시구의 ‘미츠기 공원’(사진 제공 : 인세호)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았다면 등장인물들이 공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장면이 기억날 것이다. 청춘 드라마에서는 방과 후나 한밤중의 로맨틱한 장면이 작은 공원에서 연출된다. 한국이라면 아파트 단지 내의 놀이터나 편의점이 그 역할을 담당하지 않을까.

그 정도로 마을 공원이 흔하게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일본의 도시공원법은 기본적으로는 개발 면적이 3천 제곱미터 이상이라면 그 면적의 3% 이상인 공원을 설치하여 지자체에 무상 양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1만 제곱미터보다 훨씬 엄격한 규정이다.

그 결과 지난 60년 동안 공원의 숫자는 25배가 되어, 2019년 기준으로 일본 전국의 도시공원은 13만 8,698개소로 한국의 도시공원 18,006개소의 6배 이상에 달한다. 그리고 이 숫자는 어린이 놀이터나 운동공원, 자연공원 등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도시에서 마주치는 공원의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일하다가 잠깐 숨을 돌리고 싶을 때나, 아이와 외출할 때, 반려견과 산책할 때 쉴 수 있는 시민의 휴식과 교류의 장이 마을 곳곳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소규모 공원이 지자체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공원이 지자체에 귀속되는 이상 지자체가 공원의 유지관리를 책임져야 하는데 전체 유지관리비의 90%를 소규모 공원의 유지관리비가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구 감소와 국가 공무원 기피 현상으로 관리할 일손은 점점 줄어드는데 소음 문제나 관리 미비 등의 민원은 줄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원 재편이나 재생 사업에 주민들의 협력을 얻기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2023년 1월에는 개발 면적이 1만 제곱미터 이상인 경우 공원을 설치하되, 공원의 최저 면적을 300제곱미터 이상으로 규제하는 내용으로 도시공원법이 개정되었다. 소규모 공원의 난립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2017년 6월 개정된 공모 설치 관리제도(Park-PFI : 공원에 민간 수익시설을 도입하는 제도)와 아울러, 공원 관리에 대한 인적, 경제적 부담을 줄이겠다는 정부와 지자체의 의지가 엿보인다.

토치기현 우츠노미야 역 인근의 ‘역 동쪽 1호 어린이 공원’ (사진 제공 : 인세호)
토치기현 우츠노미야 역 인근의 ‘역 동쪽 1호 어린이 공원’ (사진 제공 : 인세호)

자발적으로 공원을 관리하는 주민들의 모임이 있다지만 소규모 공원을 어떻게든 줄이려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이미 설치되어 있는 도시공원이 완전히 사라질 날이 그렇게 빨리 다가오지는 않더라도 많은 시간이 지나가면 왜 이런 곳에 조그만 공원이 있는지 신기하게 여길 일도 없을지 모르겠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공원에 일부러 찾아가야 공원을 산책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일본도 30분 남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휴식 공간을 사는 카페 공화국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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