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인세호 (채문사 대표)
칼럼니스트 인세호 (채문사 대표)

[칼럼니스트-인세호]   인터넷에서 할 수 있는 간단 테스트가 범람하는 와중, 티원콘(『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팀 T1의 팬 미팅 이벤트)에서 프로게이머도 해봤다는 반응속도 테스트가 화제가 되었다. 필자의 결과는 하위 5%, 얼마나 반응속도가 느린 건지 모를까 봐 ‘이 정도면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게 아니냐’라는 친절한 멘트까지 달려 있었다.

게임은 즐기지만 원래 반사신경이 필요하지 않은 장르를 선호하기 때문에 이 형편없는 결과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며 깔깔 웃었지만, 게임 좀 해봤다 자부하던 사람들은 자기 기록이 못마땅한지 몇 번이나 시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긴 나라도 자신 있는 분야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면 몇 번은 다시 해보았을 것이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항상 전성기의 자기 모습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잘하던 것을 못 하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오기로 극복하는 사람도 있고, 이제 재미없으니 안 하고 만다며 그만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과에 상관없이 묵묵하게 계속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특출한 재능의 차이가 없는 한 꾸준하게 계속하는 사람이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지속이 힘이다’라는 말이 금과옥조로 여겨진다.

단지 어느 순간 지속이 힘이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더라도, 지속으로 얻는 좋은 결과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자극을 빠르게 수용할 수 없는 중장년기부터는 청년기처럼 성과에 대한 기대치를 높게 잡으면 실망하기 마련이지만 잘하는 것을 처음부터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2017년, 스웨덴에서는 세계 최초의 시니어 e스포츠팀 '실버 스나이퍼즈(Silver Snipers)'가 탄생했다. 2022년 여름에는 대만의 한 대학교에서 시니어 e스포츠팀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컴퓨터도 게임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2021년에 국제 시니어 e-스포츠협회 한국대회가 열린 바 있다.

비디오 게임 강국인 일본은 어떨까. 2020년 7월에 고베시에 ‘ISR e-Sports’라는 시니어 특화 e스포츠 시설이 설치되었고 2021년에는 시니어 e스포츠팀 ‘마타기스나이퍼즈(マタギスナイパーズ)’가 창설되었다. 2023년 1월에는 ‘IT'S NEVER TOO LATE(너무 늦었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오래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목적을 가진 사단법인 시니어 e스포츠 협회가 설립되었다.

사실 게임은 나이가 많건 적건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활동이다. 화면과 소리를 인풋하고 그에 맞추어 손가락이나 몸을 움직이는 과정에 복합적인 신체 작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효과에 주목한 일본 액티비티 협회는 2018년 3월부터 ‘건강게임지도사(健康ゲーム指導士)’ 육성을 시작하였다. 말 그대로 참가자가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 건강수명과 사회참가수명을 연장하고 건강과 교류를 응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전부터 누구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는 노력이 지속되었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다. 2023년 현재, 전국 3만 명의 회원이 이용하는 31개 ‘플레이센터’를 설립한 가와사키 요이치 대표는 ‘놀이 전도사’를 자처하며 놀이를 통해 심신의 건강을 도모하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전개하고 있다. 그는 유명 게임 제작사에 입사하여 마케팅 업무에 종사하는 한편 고령자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2003년도 사내 벤처 대회에서 고령자 사업으로 입상하고 2007년에 주식회사 플레이케어를 설립한 것이다. 가와사키 대표는 일본 액티비티 협회의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꾸준히 시니어의 건강 증진에 힘을 쏟아, 3,000명 이상의 건강게임지도사를 배출하였다. 2024년도 전국 건강 복지 축제(애칭은 넨린픽이며, 넨린은 연륜, 나이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의 정식 종목으로 e스포츠가 채택되는 성과도 냈다.

건강게임지도사의 지도로 레이싱 게임 『그란 투리스모 스포트』를 즐기는 모습 (사진 제공 : 인세호 / 출처 : 일본 액티비티 협회 보도자료)
건강게임지도사의 지도로 레이싱 게임 『그란 투리스모 스포트』를 즐기는 모습 (사진 제공 : 인세호 / 출처 : 일본 액티비티 협회 보도자료)
 리듬 게임 『태고의 달인 모두 함께 쿵딱쿵!』을 즐기는 모습   (사진 제공 : 인세호 / 출처 : 일본 액티비티 협회 보도자료)
리듬 게임 『태고의 달인 모두 함께 쿵딱쿵!』을 즐기는 모습   (사진 제공 : 인세호 / 출처 : 일본 액티비티 협회 보도자료)

뉴스 영상을 통해 레이싱 게임 『그란 투리스모 스포트』로 자동차를 몰고, 리듬 게임 『태고의 달인 모두 함께 쿵딱쿵!』의 노래에 맞춰 큰 북이나 무릎을 치는 모습, VR이나 메타버스를 통해 버추얼 여행을 즐기거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면, 너무 늦었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캐치프레이즈가 마음에 와닿는다.

굳이 게임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유소년기나 청년기에는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노력의 원동력이 되는 면이 있어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고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단계를 지나가면, 물론 잘하면 더 좋겠지만 굳이 잘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아도 된다. 무언가에 도전하고 그것을 계속하는 것 자체가 이미 좋은 결과다. 실력이 부족하거나 예전보다 못해도 굳이 즐거운 활동을 ‘졸업’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살다 보면 이사나 퇴직, 노후 생활 설계 등 생활의 사이즈를 줄여야 할 때가 온다. 새로운 삶에 맞추어 동선을 심플하게 만들고, 정리 정돈하여 짐을 줄이고, 복잡한 권리 관계를 정리하는 등 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때 자기 자신이 즐기던 것을 필요 없다고 판단하여 같이 정리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일본의 국립 장수의료연구센터에서 발표한 노화에 관한 NILS-LSA(장기 종단 역학연구)에 의하면 취미 활동의 유무는 노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이 조사에서는 먼저 2010년에 60세 이상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여가 시간 활용에 대해 조사하고 2년 뒤인 2012년에 인지 기능의 상태를 재검사하는 방식을 채용하여, 여가 시간 활용 방식이 인지 기능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였다. 조사 결과,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은 집에서 쉬는 사람에 비해 인지기능 저하 리스크가 현저히 낮았다.

또, 나이나 개인 상황에 무관하게 취미 활동이 스트레스 케어에 도움이 된다는 조사 결과는 많다. 인생의 스테이지를 거치면서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만두는 경우도 있으니 무리해서라도 이어나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취미를 ‘졸업’하지 않고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지속할 수 있도록 규모를 축소하는 방법도 있다. 더 이상 못 하게 되었다면, 평생 하겠다는 비장한 각오 없이 흥미 있던 것을 한 번 해보는 것도 좋다. 이것저것 경험해서 ‘취미 부자’가 되었다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만 다시 시작하면 된다. 빛나는 성과보다는 ‘즐거움’이 결과물이라면 혼자서 하는 취미도 좋다.

사실 친구들과 만나서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 혹은 ‘아직도 그것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대단하다’는 찬사를 들으면 제법 기분이 좋기도 하다. 어렸을 때는 칭찬이 원동력이 된다고 했지만, 어른이 되면 무언가를 계속한다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들을 수 있다니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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