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상생의 가치소비

칼럼니스트 인세호 (채문사 대표)
칼럼니스트 인세호 (채문사 대표)

[칼럼니스트-인세호]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은 성인에게는 연말정산 시즌이기도 하다. 티끌 모아 태산은 안 되어도 알뜰하게 세액 공제를 받기 위해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기부금 영수증을 신청하던 와중, SNS에서 올해 시작된 ‘고향사랑 기부제’를 이용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거주 지역 외의 지자체에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함께 기부액의 30%에 상당하는 답례품을 받을 수 있는 지역경제 활성화 제도로, 예를 들어 100%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는 금액인 10만 원을 기부하면 받는 3만 포인트로 원하는 답례품을 지정할 수 있다. 온라인 시스템인 고향사랑e음에는 횡성 한우, 금산 인삼주, 나주 쌀, 지리산 벌꿀 등 지역명만 봐도 짐작이 가는 특산품은 물론 상품권이나 원데이클래스처럼 무난한 상품에서 벌초 대행, 화재 교육 패키지 등 기발한 서비스까지 총 9,444가지의 상품이 등록되어 있다.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이 ‘고향사랑 기부제’는 일본의 ‘고향납세(ふるさと納稅)’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2009년 5월부터 시작된 고향납세는 다양한 지자체에 기부하면 2천 엔을 제외한 전액이 소득세, 주민세에서 공제되는 것은 물론 해당 지역의 답례품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제도의 이용자는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19년에는 주춤하였으나 도입한 이래 매년 증가하여, 2022년에는 8,302억 엔(약 7조 5천억 원) 규모로 성장하였다.

현재 고향납세는 1,700여 개의 지자체가 참가하여 앞다투어 지역의 매력을 뽐내는 지역 축제의 현장으로서 기능하며 납세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식품 등 생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답례품이 인기 있지만, 재미있거나 특이한 답례품은 별도 사이트에서 언급되는 등, 간접적인 홍보 효과도 가지는 셈이다. 2023년도에는 오호츠크해의 얼음(홋카이도 몬베츠시), 미니어처 맨홀(오사카부 카타노시), 닌자복(미에노현 이가시), 출장 참치 해체 쇼(와카야마현 나치카츠우라쵸), 무인도 숙박권(나가사키현 사이카이시) 등의 개성적인 답례품이 주목받고 있다.

  겐페이 합전의 한 장면을 새긴 타카마츠시의 맨홀(사진 제공 : 인세호)
  겐페이 합전의 한 장면을 새긴 타카마츠시의 맨홀(사진 제공 : 인세호)

고향납세는 2006년 3월 일본 경제신문의 칼럼의 제안을 받은 정치인들이 움직여 같은 해 10월, 니시카와 카즈미 후쿠이현 지사가 세수의 지역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고향 기부금 공제를 발안하였다. 고향에서 지자체의 혜택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는 도시로 진출하여 그들의 새로운 생활 터전이 된 대도시에 납세하는 불균형을 지적하며, 지자체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와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일본은 1995년에 고령사회로 돌입하여 2010년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현재 일본 정부의 예산 중 약 30%가 고령자 관련 항목인데, 출생률이 하락하고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이상 향후 이 예산이 줄어들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일본 사회 전체가 겪는 문제지만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인구 유출이 점점 가속화되고 특히 청년의 유출이 심각(총무성 정보통신백서, 2015)한 지금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것은 주요 도시 외의 지역이다.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취업하면서 ‘자연적 인구 증가’에 기여하지 않는 대도시가 ‘사회적 인구 증가’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손 안 대고 코 풀기가 아닌가.

인구 과소화로 황폐해진 아이즈와카마츠의 상점가. 한때는 붐볐다고 한다.  (사진 제공 : 인세호)
문 닫은 야시마 산정의 상점가. 한때는 붐볐다고 한다.  (사진 제공 : 인세호)

사실 유출 자체보다는 수도권으로 유출된 인구가 장기간 귀향하지 않으며 특히 혼인 출산 후 비정규직화되기 쉬운 여성이 돌아가지 않는 경향이 더 강하다는 것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지만, 그러한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도 지자체의 예산 확보는 중요하다. 프로 장기 기사 오오야마 야스하루처럼 실거주지가 도시라도 고향에 공헌하기 위해 주소지를 옮기지 않고 납세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특히 서류 하나를 발급받기 위해서도 관련 기관에 가야 하는 아날로그 사회에서는 말이다.

고향납세가 지자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다. 최근 몇 년간 고향납세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미야기현 미야코노조시는 2022년에 195억 엔(약 1,750억 원)의 기부금을 획득하였다. 이 액수는 2023년 기준 시의 1년 예산인 968억의 20%를 초과하며, 기부금은 어린이 지원에 중점적으로 배당되어 2023년에는 보육료 무상화 등의 성과를 냈다. 해산물과 유제품으로 유명한 홋카이도, 과일로 유명한 야마나시현 등은 항상 높은 인기를 자랑하며 1조를 넘는 거액의 기부금을 획득하는 지역도 다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는 더욱 매력적인 답례품을 마련하기 위해 지역의 아이덴티티를 연구하고 특산품 개발에 열중한다. 게임 『러브라이브! 선샤인!!』의 무대로 유명한 시즈오카현 누마즈시처럼 애니메이션이나 게임과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선보여 눈길을 끄는 곳도 있다. 이처럼 유명한 특산품이 없더라도 콘텐츠와 결합하면 ‘성지’로서의 특산품을 창출할 수도 있다.

고령사회, 인력의 도시 유출로 인한 지방 세수 부족 등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는 일본과 다를 바 없다. 고향사랑 기부제의 취지대로 기부자는 세액 혜택을 받고, 지자체는 예산을 확보하여 지역의 매력을 높이는 선순환이 한국에서도 실현된다면 가계 경제는 물론 지역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023년 세액 공제를 위한 기부는 12월 31일까지 할 수 있다. 획득한 포인트는 2024년에도 사용할 수 있으니, 시간이 날 때 내 마음의 고향이 될 곳이 어디인지 한 번 살펴보면 어떨까.


 

 

저작권자 © 컨슈머와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