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인세호 (채문사 대표)
칼럼니스트 인세호 (채문사 대표)

[칼럼니스트-인세호] 일본 고교 야구의 최대 이벤트, 여름의 고시엔(甲子園)이 지나고 연말연시의 풍물시 고교 축구 선수권이 다가온다.

일본 문화를 접하다 보면 틀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다르다고 느끼는 때가 왕왕 있다. 초중고 12년간의 학교생활도 그렇다. 12년이라는 학제는 같더라도 드라마나 만화 속에서 묘사되는 일본 학생들의 학교생활은 우정, 연애, 동아리 활동, 축제라는 윤곽을 가진 채도 높은 청춘 이야기다. 특히, 멀게는 『터치』나 『슬램덩크』, 가깝게는 『하이큐』나 『쿠로코의 농구』같은 스포츠 동아리의 활약상은 눈부실 정도다. 물론 만들어진 스토리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되는 것은 ‘중요하다고 여기는 현실’이 적지 않게 반영되었을 것이다.

반면 한국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것 이외는 학생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연애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아리 활동이나 축제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니 실제 학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무언가를 이루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누군가가 학생에게 ‘공부 외의 취미생활을 가지면 삶이 윤택해진다.’고 말하면 ‘아, 정말 좋은 말이군요. 하지만 지금은 공부를 해야죠.’ 라고 대답하고 끝날 것이다.

고료 고등학교의 인터하이 출장 축하 현수막 (사진 제공:인세호)
고료 고등학교의 인터하이 출장 축하 현수막 (사진 제공:인세호)

평범한 한국인인 나도 동아리 활동에 매진하는 일본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이 아이들은 대체 언제 공부를 하려는 거지?’라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인터하이(전국 고등학교 종합 체육대회)나 취주악 콩쿠르 등 대회참가를 목표로 하는 경우는 동아리 활동에 온힘을 쏟는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면 이기건 지건 미련 없이 은퇴하고 전혀 상관없는 학과에 진학하거나, 심지어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하는 경우도 있다니 그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도 않은가.

그런데 들어보니 아까울 일이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팀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팀의 일원으로써 멘토와 선후배, 동기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커나간다. 노력해도 실패할 때도 있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때로는 도움을 받고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기여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기른 부드러운 ‘힘’은 평생을 떠받치는 마음의 보물이 된다.

게다가 사회에 나가서도 자신과 같은 계열의 동아리 활동을 한 선배나 상사를 만나면 단숨에 호감을 얻기도 한다. 굳이 비슷한 활동을 한 사람을 찾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진심으로 즐기며 열중했던 경험은 평생 동안의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취미활동을 하면서 몸과 정신이 튼튼해지고, 좋은 선후배도 만날 수 있게 되고, 네크워킹 기술도 연마하는 셈이니 일석삼조가 아닌가?

하지만 일본도 동아리 활동에 참가하는 학생의 비율이 점점 하락하고 있다. 동아리 활동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운동부의 경우, 중학생의 입부율(入部率)은 2022년 기준으로 59.6%( 출처 - 2022년12월26일 일본 NHK 뉴스)다. 출생률의 하락으로 인하여 팀 스포츠가 불가능한 환경이 되고 교사의 숫자가 줄어들어 동아리를 지도할 수 없게 된 것이 제일 큰 원인이다. 예전에는 ‘자율’이라지만 반강제적으로 동아리에 가입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동아리 활동이 축소되어 영향력이 줄어든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스포츠청과 문화청에서는 학교 동아리 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 2025년까지를 개혁추진기간으로 선포하고 동아리 활동을 지역사회와 연계하거나 이행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각종 기업들이 지역의 활동에 기여하겠다고 앞 다투어 손을 들고 있지만, 학교에서 하는 동아리 활동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모든 인프라는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고 투자도 도시에 몰리기 때문에 지역의 경제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실제로 한국의 방과 후 교실도 학교에 따라, 지역에 따라 강좌의 숫자와 내용 모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일본보다 한발 앞서 실행한 셈인데, 뒤를 돌아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인구가 계속해서 줄어드는 미래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예상되는 숫자에 맞추어 현상을 ‘처리’하지 말고, 앞으로 거의 백년은 될 아이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한다면 적어도 마음속에 보물을 하나씩 품을 기회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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