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안우빈
칼럼니스트-안우빈

[칼럼니스트-안우빈]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많은 고질병 중 하나는 완벽주의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바에는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겠다는 거다. 완벽함이란 누구도 다다를 수 없는 경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이 실현 가능한 목표인 것처럼 완벽함을 찾는다.

특히, 환경과 관련된 것은 더욱 그런 성향을 보이는 것 같다. 그것이 '옳은 일'이나 '정의'와 관련 됐다면, 한단계씩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배달을 시켜먹고 나면 배달 용기가 전부 일회용품이라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배달을 줄인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칭찬해주기 보다는 다른 약점을 찾는다. 그럼 일회용품을 아예 쓰지 않을 거냐며, 네가 그렇게 완벽하냐고, 일회용품을 하나도 안 쓰고 살 수 있는지 보자는 식이다. 

나는 그렇게 환경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데, 마치 나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불쾌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이들도 나와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원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만' 잘못한 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서라도, 스스로를 향한 강박같은 완벽주의가 있다. 매일 쓰는 샴푸를 보다 플라스틱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보자. 매번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는 샴푸가 아니라 친환경적인 샴푸바를 써보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이 넘어갈 수도 있다. 비누로 머리를 감으면 뻣뻣해지지만 요새는 샴푸바나 린스바와 같이 환경을 생각하는 동시에 기능적인 제품들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요새 심각하게 환경문제가 대두되고 있고, 다양한 친환경 제품들도 홍보가 많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언뜻 그런 생각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방으로 가는 동안, 너무 많은 플라스틱 용품들이 눈에 띈다. 내가 방금 음료수를 마신 페트병도, 어제 야식으로 떡볶이를 시켜 먹고 생긴 배달용기도 전부 플라스틱 쓰레기다. 

그러면 어느샌가 샴푸바를 사야겠다는 마음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에이, 됐어. 내가 이렇게 플라스틱 쓰레기를 많이 만드는데, 겨우 샴푸통 하나 줄인다고 환경이 지켜지겠어?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잠이나 자자.'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할 게 있다. 바로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환경이나 가치소비에 있어 완벽할 수는 없을 뿐더러, 완벽해야할 필요도 없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야 월등하게 나은 것이다.

만약 플라스틱 쓰레기가 마음에 걸린다면, 당장 집에 있는 모든 플라스틱을 없앨 필요는 없다. 그건 불가능할 뿐더러, 그렇게 해야할 조금의 의무나 필요성도 느껴서는 안된다. 일주일에 배달 음식 두 번 시키던 걸 한 번으로 줄이는 것만으로 너무나 큰 발전이다. 충분히 환경에 좋은 일을 한 것이고 얼마든지 뿌듯함을 느껴도 된다. 

현대인들은 칭찬에 어색하다.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그렇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얼마든지 칭찬을 쏟아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욕실의 플라스틱이 거슬리는데, 지성인 두피에 꼭 맞는 샴푸를 찾아내서 바꾸기가 힘들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린스나 바디워시를 바꾸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샴푸 회사에 리필 제품을 따로 팔아달라고 글을 남겨보는 건 어떨까. 꼭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더라도, 작은 한 걸음 만으로 충분하다. 그래도 당신은 가치소비를 하는 것이며, 지구를 위하는 것이고, 당당할 자격이 충분하다.

칭찬에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말이다. 가치소비라는 명목 하에 전부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 단 하나의 물건을 새로 산 것이라도, 단 한 번의 소비였다고 해도 괜찮다.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그것이 아무리 일회성의 이벤트였어도, 값이 싼 물건이었어도 더 나은 일인 것이다. 우리는 완벽할 필요도, 가치소비를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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