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채권추심의 공통점, '버려야 산다'
이순신과 채권추심의 공통점, '버려야 산다'
  • 컨슈머와이드 편집국
  • 승인 2014.08.30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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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컨슈머와이드-이상권 변호사]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이 말은 이순신 장군의 말이다. 

이순신이 명량에서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을 물리친 것은 그에게 죽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조금이라도 살고자 했다면, 그는 한 척의 배로 수백척의 왜선 앞에 나가는 무모한 일을 하지 않고, 수군을 권율에게 맡기고 초야에 묻히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명량에서 죽고자 했고, 죽고자 했기에 명량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것은 인생의 진리다. 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몸으로 보여준 것이며, 그의 제자들에게 가라고 한 제자의 길이다. 성경 마태복음 16:24에서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자기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는 것’을 말한다. 예수 자신이 십자가에 죽은 것처럼, 그의 제자들도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다. 

뒤이어 예수는 이순신이 했던 말과 거의 같은 말을 한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목숨을 잃으면 얻을 것이다는 내용이다. 이순신이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이다. 물론 예수가 말하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말하기에 의미는 약간 다르다. 

인생에 진리는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송이나 채권추심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소송이나 채권추심을 하는 사람은 돈을 받기 위해서 한다. 그런데 돈을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집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집념이 오히려 목표를 달성하는데 방해가 된다. 

이상권 변호사

어제는 서울중앙지법 판사실에서 조정기일을 가졌다. 재건축조합에 대한 용역비 사건이었는데 상대방 변호사는 청구액 중 상당히 작은 액수를 조정금액으로 제시했다. 의뢰인은 이자까지 다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사는 의뢰인에 대해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책망을 했는데, 판결을 받더라도 실제 돈을 받을 가능성이 적으므로, 작은 액수라도 합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사건의 경우, 자신이 얻어야 할 돈에 대한 집착을 포기해야 조정이 가능하다. 

이것은 채권추심에도 마찬가지이다. 채권추심을 의뢰하면서 이자까지 다 받아야 한다고 집착하는 의뢰인들의 돈은 의외로 받기가 어렵다. 오히려 이미 포기한 것으로 여기고, 얼마든지 합의의 여지를 주는 의뢰인의 돈이 받기가 쉽다. 왜 그럴까?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기 때문이다. 돈을 받고자 하면 받기가 어렵고, 돈을 포기하고 마음을 가볍게 가지면, 돈을 받기가 쉬운 것이 채권추심의 역설이다. 

채권추심전문변호사사무소에 채권추심의 의뢰하는 사람들은 이미 본인이 스스로 채권추심을 하다가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채권추심 업체에 채권추심을 의뢰할 경우 마음을 비우는 것이 좋다. 돈을 못 받아도 좋지만, 돈을 받으면 더 좋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 돈은 어디에 써야 하기 때문에 꼭 돈을 받다야 한다고 말하는 의뢰인이 있다. 그런 집착은 돈을 받는데 큰 방해가 된다. 필자는 모 기업으로부터 의뢰받은 1000억원의 판결문을 갖고 있다. 이 판결문은 액면은 1000억이지만 실제가치는 0원이다. 이런 채권을 추심하면서 1000억을 생각하면, 이 돈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때로는 버려야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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