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무분별한 육식 문화를 통해 생명존중 가치소비를 생각해 본다

칼컴니스트 강성미 ((사)유기농문화센터 원장)

[칼럼니스트-강성미] 억압과 배제, 경쟁과 분리라는 관념에 기초한 낡은 신화를 대체하여 협동, 자유와 평화, 삶과 화합을 긍정하는 새로운 신화가 싹트고 있다. 필자는 이 새로운 신화의 탄생에 중요한 열쇠가 바로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식습관은 인류의 사고방식에 심오한 영향을 미치며, 문화의 가치체계가 복제 재생산되는 주된 경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신화와 진화한 의식의 탄생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음식에 대한 인식 변화와 실천이 꼭 이뤄져야 한다.

█ 연관성 찾기 연습

우리는 만성적인 전쟁, 집단학살, 기아, 질병 확산, 환경파괴, 동물멸종, 동물학대, 소비지상주의, 약물중독, 소외, 스트레스, 인종차별, 여성 억압, 아동학대, 기업의 착취, 물질주의, 빈곤, 불의, 사회침체 등 도무지 손쓸 방도가 없어 보이는 수많은 문제들에 포위된 채 살아간다. 이런 문화적 곤경은 사실 너무나도 명백하지만 관심 밖의 대상이었던 식문화 때문에 발생한다. 이 원인을 무시한 채 사회·환경·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질병의 원인을 도외시한 채 증상만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당신이 자란 사회보다 더 윤리적이 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이 있습니다" (사진:강성미 제공)

이제 음식 선택이 개인과 문화 전반의 건강, 지구 생태계, 종교, 인류의 태도 및 신념, 사회적 관계의 질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고 실천에 나서야 할 때이다. 그것이 학대받는 아름다운 지구 위에서 온 생명체가 더 조화롭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길이다.

(사진 제공 :강성미)

동물성 음식은 대부분 죽은 동물의 살이나 내장 혹은 분비물이다. 현시대의 문화권에서 주로 식용으로 사용하는 동물 명칭의 잔인함 보여 준다. 우선 살펴보면, 물고기와 조개류는 참치, 메기, 연어, 게, 새우 등 주로 종 이름으로 부른다. 조류 또한 닭, 칠면조, 오리, 꿩과 같이 종 이름 혹은 가슴살, 다리살, 흰살, 검은살, 등 부위와 색에 따라 세분해 지칭한다. 이와 달리 포유류의 살은 종 이름보다는 허릿고기 설로인 (sirloin, 소의 허릿고기의 윗부분), 옆구리살, 우둔살 ,어깻살, 갈빗살, 티본(T-bone), 가슴고기와 같이 부위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돼지고기,베이컨, 갈비, 송아지고기(veal), 양갈비, 사슴고기 (venison), 양고기 (mutton), 간 쇠고기 (ground beef), 햄버거, 핫도그, 볼로냐소시지햄 등도 있다. 내장을 먹기도 하는데 특히 어린 포유류의 콩팥과 간, 오리나 거위의 살찐 간(푸아그라foie gras), 몇몇 동물의 위 조직(트리프tripe. 소와 같은 동물의 제 1 위와 제 2 위)이나 심장, 혀, 뇌, 발 (돼지족발) 등도 해당한다(헤드치즈head cheese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미소, 양, 염소의 젖은 직접 마시고, 송아지의 위 내막에 들어있는 레닛(rennet)은 버터와 요구르트, 크림, 치즈 따위를 응고할 때 사용한다. 조류(닭 오리 메추리 타조) 가 낳은 알과 벌의 몸에서 추출한 꿀 또한 섭취한다.

고통을 전혀 또는 거의 겪지 않으면서 건강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제공하는 식물과 달리, 동물은 항상 공격당한다. 칼을 들어 닭이나 소의 살을 베는 것은 사과나 감자의 껍질을 까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행위이다. 돼지의 다리를 베먹는 것은 신선한 사과를 베어무는 것과 비교할 수조차 없다. 저명한 동물행동학자 콘래드 로렌즈Konrad Lorenz는 강한 어조로 "칼로 개의 몸을 토막내는 일과 상추를 다듬는 일 사이의 차이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를 위해 자살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제 여러분은 모든 척추동물이 자기수용기가 내재된 중추신경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상, 화상, 찰과상, 전기충격, 냉기, 열기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통증 자극에 민감할 뿐 아니라 인간과 마찬가지로 육체적으로 감금당하거나 아기를 빼앗기거나 내적 욕구가 좌절될 때 심리적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잘 아셨을 것이다.

█ 부정의 문화

"우리가  다른 동물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볼 때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고 그래서 우리 모두는고통에서 자유롭게 살 자격이 있습니다"
 (사진 제공: 강성미)

어떤 것을 억지로 무시하면 할수록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힘과 영향력은 더욱 커지는 법이다. 동물성 음식을 온전한 정신으로 바라본다면 필연적으로 고통, 잔인함, 착취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깊이 들여다보길 거부한다. 인류의 가장 기초적 활동이자 중대한 의식인 식사에 대한 이 회피와 부정의 관습은 삶의 공적·사적 영역 전체에 널리 퍼져있다. 그렇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과 죄의식으로 인해 견디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진실을 인정해 버린다면 긍정적으로 형성한 자아상과 큰 충돌을 일으켜 심각한 인지적 부조화와 정서적 불안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래서 애써 무시하면서 끝내 영적으로 무지하고 부주의한 상태에 안주하게 된다.

고통을 자각하는 동물이 공포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상황을 정면으로 응시할 능력이나 책임질 의도조차 없이, 인간은 그저 예의와 허식에서 비롯한 분열증에 빠져든다. 육식을 할 때마다 냉혹한 잔인함만 불편하게 남는다. 필자는 이 분열이 현대 인류의 가장 깊은 상흔이며, 여기서부터 다른 수많은 상처와 분열이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구매하고 요리하고 먹을 때 우리가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외면함으로써 스스로가 낳은 공포와 고통뿐만 아니라 주변 세계의 아름다움에도 눈을 감아버린다. 이 땅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보고 감상할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숲과 바다를 유린하고 자연세계 전체를 쉽게 파괴한다. 학대받다 살해 당해 식탁 위에 올라온 동물들과 단절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을 포함한 이 세상 만물의 아름다움과 광휘에도 무감각해질 수 밖에 없다.

하루도 빠짐없이 고문당하다 죽어간 동물들의 살을 무감하게 먹는 수많은 아이와 성인들은 인류의 미래에 폭력과 전쟁, 빈곤과 절망이라는 씨앗을 뿌린다. 어쩌면 불가피한 결과 아닐까? 다른 존재에게 해를 입히고 그들을 노예로 삼는 씨앗을 뿌려놓고서 환희와 평화, 자유의 열매를 수확하길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 사랑과 자유, 평온한 세계를 아무리 외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실제로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행동, 그 중에서도 습관적 행동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폭력의 악순환은 식사에 깃든 폭력성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이 사람처럼 총칼을 들고 보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물에게 저지르는 폭력 자체는 인간에게 어떻게든 돌아온다.

동물에 대해  내가 스스로에게 했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나였다면 어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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