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독일마을에서 / 사진: 복요한 기자 
 경남 남해독일마을에서 / 사진: 복요한 기자 

[컨슈머와이드-복요한 기자]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는 자원봉사라는 거대한 조직을 체계적으로 운영하며 다양한 영역에서 매칭형식의 사회적 참여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사회적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보고가 있다. 자원봉사를 지역사회의 보살핌으로 해석하는 그들의 방침은 수많은 시민에게 존재감과 사회적 위치를 부여하는 역할도 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로 이민을 간 한 지인은 "네덜란드에서는 장애가 없다면 손발을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일 아니면 봉사를 한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 해외 자원봉사활동에 자원봉사활동에 관한 제도 및 프로그램 운영 현황조사 참조)

사진 출처: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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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60세 이후의 시민을 인력으로 보지 않고 지원 및 보호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듯하다. 노년에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상당히 쉽지 않은데, 이는 중년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년이든 중년이든 나이 든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을 국내 고용자 다수가 꺼려하기 때문이다. 남을 돕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도 일자리 문턱은 높다. 젊은 시절부터 품어왔던 꿈을 펼치기 위해 문을 두드려보지만 자원봉사 역시 나이와 학벌, 사회적 지위에 따라 극히 제한된 영역으로 봉사를 제한하고 있어 자리 얻기가 역시 쉽지 않다. 

사진 출처: 시애틀 종단연구/한국보건사회연구원 국외출장보고서/박현주교수
사진 출처: 시애틀 종단연구/한국보건사회연구원 국외출장보고서/박현주교수

이처럼 젊고 고학력에 사회적 후광을 가진 인력에 최상의 가치를 두는 사회적 흐름을 반증하는 연구가 있다. 박현주 글로벌사이버대학 교수는 1956년 40년에 걸쳐 진행되었던 시애틀 종단연구에 근거해 중년기는 지적 영역의 많은 부분에 있어 절정기에 달하며, 인생 후반부의 경우, 공간과 수, 지각 속도의 감퇴는 진행되나 언어능력, 귀납적 추론, 언어기억 속도는 급격하게 저하되지 않고 축척된 지식에 의해 상당부분 건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박현주/마음나이 다이어트-정신 능력의 변화)

어르신 촬영 (KIM) ; 꽃이나 나무의 색감을 발견할 때마다 그녀는 호주머니에서 커다란 휴대폰을 꺼내 연신 셔터를 누른다. 살을 에이는 겨울도 고스란히 계절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어르신 촬영 (KIM) ; 꽃이나 나무의 색감을 발견할 때마다 그녀는 호주머니에서 커다란 휴대폰을 꺼내 연신 셔터를 누른다. 살을 에이는 겨울도 고스란히 계절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기자의 지인인 한 70대 어르신(KIM이라 칭하겠다)의 이야기를 해보자. KIM은 60대 후반에 학사학위에 도전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그녀는 중장년이 된 시점,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싶다는 구체적인 소망이 생겼다. 젊은 시절에는 언론인 남편의 글을 능숙하게 편집했던 능력은 있지만 60대부터 관절이 예전같지 않고 암기가 더디다 보니 대학에 입학해 보자는 딸의 권유를 몇 해간 망설였다. 그 와중 봉사에 지원한 한 기관에서 혼자된 것을 이유로 "여기가 (노인 거두는) 자선 단체인 줄 아냐" 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녀는 기저귀도 채 떼지 못한 아이와 걷는 아이, 그리고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까지 있던 때, 집나간 남편으로 인해 친정동생의 도움을 받으며 홀로 육아와 생계를 감당한 세월이 떠올라 속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냉담한 시선을 계기로 KIM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실버인생에 대학이라는 문턱을 넘게 됐다.

어르신 촬영 (KIM)
어르신 촬영 (KIM)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고, 딸이 찾아준 유튜브 자료를 시청하며 손으로 한자한자 메모해 연필 레포트를 쓴 뒤, 떨리는 손목으로 촬영해 제출했다. 평소 담고 있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 행복했다. 진득하게 공부하니 평생 남아 있었던 배움에 대한 목마름까지 가시는 것 같았다. 문제부터 줄곧 막혔던 객관식 시험과 긴장 가득했던 실습까지 거치고 이제 70대 초반, 졸업을 앞두고 한글교사를 자원했다. 고통을 감내하며 자기 색깔이 강했던 아이들을, 이후 손주까지 키운 할머니의 마음에는 지혜와 여유가 녹아 있었고, 한국 사회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외국인 자녀세대 앞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르신 촬영 (KIM)
어르신 촬영 (KIM)

100년 인생 시대, 노년의 삶은 신체적 능력이 느려질 뿐, 인생 가장 지혜롭고 내면이 아름다운 열매의 시기다. 우리 자신이 실버세대가 된 그 시점에는 대한민국이 노인의 시간을 이해하고 격려할 뿐만 아니라 귀하게 여기는 사회로 바뀌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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