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운 변호사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대표 변호사)
한필운 변호사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대표 변호사)

[컨슈머와이드- 한필운 변호사] 우리는 살면서 쉴새 없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말이라는 것이 참 신기한 건,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사랑과 감동을 전할 수도 있지만, 그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형사법에서 대화의 내용을 이유로 처벌할 수 있는 죄는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간단한 퀴즈 하나 내볼게요.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던 사람과 전화로 쌍욕을 하며 싸웠습니다. 이게 서로에게 무슨 '죄'가 될까요?

좀 전에 대화의 내용을 이유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는 크게 2가지라고 말씀 드렸지요.

형법 제311조(모욕)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307조(명예훼손) ①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모두 '공연히'라고 해서 '여러 사람이 들었거나, 듣게될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전화 통화는 단 둘이 하는 거잖아요. 공연성이 없어서, 전화로 욕한 걸 가지고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장난전화'는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벌금을 받을 수도 있지만요.

누가 전화해서 욕을 하기 시작하면,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이때다 하고 같이 욕을 해주셔도 좋습니다.

사람들의 대화를 가지고 처벌한다는 것은 매우 애매한 일입니다. 말과 글은 감정의 표현이고, 모든 국민은 표현의 자유를 가집니다. 말로 상처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적절한 규제를 가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이를 민사상 손해배상이 아닌, 형사상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에 관하여는 '비범죄화' 해야 한다는 이론이 항상 존재합니다. 

모욕죄 무죄 판결문 (사진 제공: 한필운 변호사 /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모욕죄 무죄 판결문 (사진 제공: 한필운 변호사 /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오늘은 모욕죄 무죄 판결을 받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희 의뢰인은 점잖은 분이시고 평생을 봉직한 회사에서 정년퇴임하신 신사적인 분입니다. 수원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를 맡으시면서 봉사를 하기도 하셨지요.

입주자대표회의는 갈등이 없으면 참 좋은데, 간혹 극심한 갈등이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같은 이웃끼리 형사고소, 민사소송, 민원제기 하면서 싸우시는 곳들이 있지요.

우리 의뢰인에게 이상하게 삐딱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 분도 우리 의뢰인을 그렇게 느꼈을까요. 우리 의뢰인보다 12살이 어린 그 동대표님은 사사건건 의뢰인에게 시비를 걸기 일쑤였습니다.

어느날 관리가 잘 안 되어 있는 아파트 광장에 주민 한 분이 정성스레 꽃을 심고 계셨습니다. 입주자대표였던 우리 의뢰인은 그 주민이 고마워서 화단미화를 도와드렸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열리기로 한 날 회의에 출석한 우리 의뢰인에게 그 동대표님께서 문제제기를 하셨습니다. '아파트 화단에 꽃송이를 심어 아파트의 가치를 떨어뜨린 거 아니냐'는 취지였습니다.

화단에 꽃을 심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가치가 왜 하락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우리 의뢰인은 또 시비를 건다고 생각하고 설전을 이어갔습니다. 설전 중에 그 동대표는 나이가 12살이나 많은 의뢰인에게 삿대질을 하기도 하고, 반말로 일관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사회에서 만난 사람끼리 나이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 하실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 관습이 나이가 어리던 많던 겸양해야 하는 사이라면 반말을 잘 허용하지 않지요. 자꾸 이상한 트집을 잡고 반말에 삿대질까지 하는 동대표에게 화가난 우리 의뢰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새끼야, 이 새끼는 아래위가 없어, 이 새끼 반말 빡빡 쓰고 지랄이야, 인간 같아야 내가 상대를 하지"

한 번에 쭈욱 말한 것이 아닙니다. 대화 중에 문제가 되는 것만 발췌하여 검사가 공소를 제기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모욕죄'로 처벌을 받아야 할까요.

검사는 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가지 정황을 참작해서 벌금 50만 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습니다.

약식재판부(법원)도 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벌금 50만 원 약식명령 내렸습니다.의뢰인은 억울했습니다. 어거지 말싸움에 휘말려 벌금까지 내라니요.

그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무죄라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저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게 '처벌할 정도'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욕죄 판례는 워낙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언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법원에서 어떻게 판결을 내릴지 예상한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저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이 상황, 이 관계에서 이게 처벌할 정도의 일인가?' 이것도 다분히 느낌적인가요. 형사전문변호사의 감일까요.

1심에서 이 사건 관계자들을 모두 증인신문 하였습니다.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새끼'로 지칭된 동대표도 기억하는 그대로 말했고, 옆에서 들었다던 '동대표'들도 기억나는 대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관리소장'은 그 장소에 없었고, 자신은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검사의 공소제기가 잘못된 것입니다. 동대표들은 있었지만, 관리소장은 없었습니다.

이 부분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이 동대표라고 생각해보세요. 입주자대표회의를 갔더니, 맨날 언쟁하는 두 사람이 이런 저런 욕을 하면서 싸웠습니다. 그럼, 우리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이 그랬는데, 그걸 다른데 가서 다른 주민한테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까요? 아니지요. 그 장소에서 듣고 끝나는 거지, 그 말이 퍼지고 퍼져서 누군가의 명예가 침해될 가능성이 적은 것입니다. 내부자들이니까요.

그리고, 대화의 맥락을 보면 의뢰인의 발언들이 심한 것도 아닙니다. 나이가 한참 어린 동대표가 삿대질과 반말을 하기에 '아래위가 없다'고 했고, '인간 같아야'라는 말은, 그 말을 들은 주변 사람이 속으로 '저 사람은 진짜 인간 같지 않구나'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겁니다.

'모욕'에 해당하려면, 주변에서 들은 사람이, 그 말로 인하여 그 말을 당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만한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단순한 욕설로는 그게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변론 방향성은 이랬습니다.

1. 동대표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 만한 모욕적 언사에 해당하지 않는다.

2. 동대표들만 들었으므로 공연성이 없다.

3. 설령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에 해당한다.

4. 그래서 무죄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관리소장'이 없었는데도 있었다고 판결문에 쓸 정도로... 그냥 말그대로 그냥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요즘 단독 재판부 판사님들께서 많이 바쁘신 건 알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판결이었습니다.

의뢰인께서는 그냥 50만 원 내고 말까 생각도 하셨지만, 저를 믿고 항소하기로 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설전 한 번에 무죄판결 나올때까지 2년 6개월이 걸렸습니다.

원심판결을 파기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2. 나이 어린 동대표가 반말을 계속하여 흥분상태였다.

3. '새끼'나 '지랄'은 경미하고, '아래위가 없다, 반말을 쓴다, 인간같지 않다'는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에 불과하다.

4. 처벌해야 할 '모욕'에 해당하지 않는다.

무죄가 나오면 검찰은 무조건 항소를 합니다.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하였지만,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무죄'라는 확신을 가졌던 '변호인'과, 변호인을 믿어주신 '의뢰인'이 함께 만들어낸 무죄판결입니다.  아래에 전문을 공개합니다.

모욕죄 무죄 판결문 (사진 제공: 한필운 변호사 /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모욕죄 무죄 판결문 (사진 제공: 한필운 변호사 /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모욕죄 무죄 판결문 (사진 제공: 한필운 변호사 /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모욕죄 무죄 판결문 (사진 제공: 한필운 변호사 /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모욕죄 무죄 판결문 (사진 제공: 한필운 변호사 /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모욕죄 무죄 판결문 (사진 제공: 한필운 변호사 /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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