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소비- 생활기] 다름을 이해한다는 것.. 베트남 하노이 올드타운에서 ②

베트남 하노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오토바이떼, 그 무질서한 모습과 계속되는 경적소리에 짜증이 났고 안전을 위협 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날 정도였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경적 울리는 것은 '지나갈 테니 주변에 있는 운전자와 보행자는 조심하라는 그들의 문화이자 배려, 약속' 이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의 폭을 넓혀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울 수 있어 감사했다.

2024-01-17     문성민
작가 문성민

[컨슈머와이드-문성민] 삑 삑삑. 택시에서 호텔 앞에 내리자마자 사방에서 울리는 오토바이 경적소리에 정신을 빼앗겼다. 이전에 가봤던 동남아의 어느 도시들보다 하노이 올드타운의 오토바이 통행량은 압도적으로 높았다. 어린 학생이나 나이든 노인이나  나이 성별 상관없이 대부분 오토바이를 몰고 다녔다. 올드타운의 좁은 인도는 주차된 오토바이가 점령해버린 상태라, 난 차도로 걸어 다녀야 했다. 처음 경험해 보는 무질서의 압박에 길가에 서있을 때마다 불쾌했다. 그래서 가급적 앱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다녔다.

 

하노이 문묘로 들어가는 길  (사진 제공 : 문성민)
하노이 문묘의 조형물   (사진 제공 : 문성민)

이튿날 하노이 문묘를 시작으로 하노이 관광에 나섰다. 입구에서부터 풍겨져 나오는 향냄새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곳은 하노이 최초의 대학이었던 곳으로 공자를 모셔 놓은 사원이 함께 있다. 불교의 절과 비슷한 듯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원의 모습이 색달랐다. 공자를 비롯한 여러 학문의 신, 호랑이, 주작, 거북이 등의 정교한 조형물도 인상적이었다.

하노이 문묘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작가의 모습  (사진 제공 : 문성민)

하노이 문묘는 11세기에 건립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오래된 역사만큼 베트남 사람들에게 의미 깊은 장소인지 기도를 하는 현지인이 많았다. 우리도 현지인들을 따라 신께 기도를 올렸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기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주시기를. 그리고 안전하게 여행을 끝내기를......'

문묘를 나서는데 장대같은 소나기가 쏟아졌다. 비를 피할 겸 이른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침식사가 다 소화되지 않았지만 여행에선 먹는 것이 남는 것 아닌가! 새로운 음식을 먹는 재미를 누리기 위해  미리 찾아 놓은 식당에 방문했다. 식당 안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빼곡했다. 메뉴판에는 삼모작 벼농사를 하는 지역답게 쌀로 만든 음식이 많아 낯설지 않았다. 반쎄오, 쌀국수, 짜조 등 베트남 음식을 주문해 맛있게 먹었다. 고수 같은 향신채가 곁들여지지만 역하지 않아 현지식 그대로 먹을 수 있었다. 외국 관광객 위주의 식당답게 현지 물가로는 비싼 축에 속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사먹는 가격보단 저렴했다. 혼자 여행할 때는 길을 걷다 현지인들이 많이 앉아 있는 식당에 불쑥 들어가 먹곤 한다. 하지만 가족들과 여행할 땐 미리 찾아 놓은 깔끔하고 위생적인 곳 택한다. 함께 하는 가족과의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행여나 기분 상해할 요소는 미리 만들지 않는 것, 즐거운 여행의 완성 조건이다. 

하지만 오토바이의 압박은 예상할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베트남 여성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소화가 덜 된 상태에서 음식들을 집어넣은 터라 걸어가기로 했다. 하노이에 온 지 이틀째라 길을 건널 수 있다는 자신감도 올라왔었다. 하지만 눈앞에 넓은 차도를 만나고 나서야 택시를 부르지 않은 걸 후회했다. 나를 선두로 동생과 엄마가 서로를 붙잡고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무서워 화가 날 정도였다.

​“언니! 나 못 가겠어. 무서워!”

“갈 수 있어. 어제 겪어 봤잖아. 알아서 다 피해가! 나만 따라와.”

“언니! 빨리 가지 마! 옆에서 막 달려와!”

“조용히 하고 따라와봐. 나도 무섭잖아.”

하노이 올드타운의 오토바이들. 이건 많지 않은 수준이다  (사진 제공 : 문성민)

해냈다! 넓은 오토바이 차선 하나와 일반 차선 2개로 이뤄진 차도를 건너는데 성공했다. 우리나라 4차선 도로정도의 크기였다. 길을 건너던 20초의 시간이 20분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 땀이 삐질삐질 나는 것이 더워서인지 긴장한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성공의 기쁨과 안도만 남았을 뿐. 아직도 등 뒤에선 오토바이의 경적소리가 울려댔다. 

나중에 호텔 직원에게 들은 얘기로는 베트남에선 경적소리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의미에서 사용한다고 했다. 지나갈 테니 주변에 있는 운전자와 보행자는 조심하라는 그들의 문화이고 약속인 것이다. 듣고 나니 쉴 새 없이 울리던 경적소리와 멈추지 않고 다가오는 오토바이의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경적을 자주 울리지 않는 우리에겐 위협적인 소리로 느껴지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

호텔 직원은 길을 건너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차와 오토바이가 다가오는 방향을 계속 보면서 ‘멈추지 말고 천천히’ 걸어가라고 했다. 오토바이는 알아서 피해갈 것이라고. 그래도 무서우면 다른 사람이 건널 때 같이 건너라고 말해주었다.

얘기를 먼저 듣고 길을 건너볼 것을 괜히 짜증만 냈다. 나의 기준으로 타인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유를 알게 된 이후엔 경적소리를 내며 오토바이가 다가오면 여전히 무섭긴 했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그들에겐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유를 몰랐다면 여행 내내 불쾌할 뻔했다. 우리와 달라 불편하고 이상하게 느꼈던 상황의 이유를 알고나니 무지했던 나를 반성하게 됐다. 또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의 폭을 넓혀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울 수 있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