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월드컵에 열광하지 못하는 이유

- 월드컵, 그 숨겨진 두번째 얼굴, 축제를 위해 죽어간 사람들의 애가

2014-07-02     Patrick Jun 기자

[컨슈머와이드-Patrick Jun]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이 한창이다. 이제 막 16강의 고지를 넘어 8강 겨루기 중이며, 연일 이어지는 그라운드의 진기묘기에 온 세계의 축구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모든 언론들은 그날의 주요 경기 현황을 보도하면서 이후 예측까지 곁들여 시청자들의 관심에 부응하고자 애쓰고 있고, 더불어 월드컵 개최지인 브라질에 대한 각종 문화 소개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에서는 이같은 축제분위기와는 달리 얼마 전부터 월드컵의 양면성에 대한 지적을 넘어, 월드컵 때문에 피흘리고 죽어간 브라질 국민들의 애통함을 호소하는 글과 사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 사진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해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세계인의 축제지에서 있는 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들. 그곳에는 죽음과 피, 그리고 분노와 절규가 가득했다.

페이스북에서 이같은 사진들을 퍼나르는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브라질의 월드컵 개최를 위해 준비해 온 지난 2년여 동안 자그마치 2,000여명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살던 곳에서 쫒겨나 길거리에 나 앉았으며, 그들의 대부분이 도시 빈민, 노숙자등 사회적 약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월드컵 준비와 공사로 인해 오히려 국민들은 더욱 더 어려운 경제난을 겪고, 생활고와 민생고로 피폐한 삶의 무게에 넘어지고 죽어가고 있다며, 월드컵 개최 자체를 반대하고, 외국 관광객들에게 월드컵을 찾아 자신들의 나라를 방문하지 말것을 외치는 이들의 소리도 있었다.

무수히 많은 나라들이 월드컵을 통한 국가적 위상의 상승은 물론 실질적인 경제 상승 효과가 어마어마한 것으로 전해졌고, 그때문에 개최국이 되기 위해 로비를 하고 엄청난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왜 브라질의 국민들은 이같은 기회를 원하지 않는다고 외쳤던 것일까?

브라질 정부는 공식적으로 월드컵 개최를 준비하면서 죽은 사람은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관련 시위 도중 우발적인 사고로 인해 사망한 희생자가 있었지만, 의도된 바가 아니며, 그외에 다른 죽음이나 피해자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페이스북이나 인터넷에 올라와 빠른 속도로 전해지고 있는 사진 속의 모습은 그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담고 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월드컵이란 것이 자국민의 생명과 피를 흘려서라도 국가가 치뤄야하고 또 그만한 고통과 아픔을 감례할만한 중요한, 가치있는 일일까?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가 국민들의 생명이나 생존의 권리보다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국익을 위해 소수의 죽음과 피는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월드컵의 개최일까지도 여전히 공사를 마치지 못하고 임시 간이 설치물을 통해서 관객들이 입장하고 이동하는 모습이 뉴스를 타는 것을 봤다. 위험천만한 일을 감행하는 브라질 정부의 말하지 못하는 속내도 궁금하지만, 과연 이같은 의문과 의혹들이 있는 가운데 우리는 그저 아무런 거리낌없이 월드컵에 환호하고 열광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맘이 아파오고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나에게서 월드컵에 대한 기대로 들뜨고 브라질 현지에라도 날아가고 싶었던 마음이 사그러들고 흥미마저 떠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왠지 이유 모를 안타까움과 분노가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낀다.

만약 정말 페이스북에 떠돌아 다니는 이 사진들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왜 분노하고 거부해야 할 것에 도리어 환호하고 열광하는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저 억울한 죽음에 대한 분명한 진상 규명과 합당한 처벌을 통해 재발을 근절하고자 하는 노력이 아닐까?

축제는 끝이 났다. 더 이상 월드컵은 세계인들의 평화와 기쁨을 나누는 축제가 아니다. 개최국 국민들의 피와 희생을 통해 준비되고, 그저 재정적인 보상으로 되갚아지는 것을 기대한 채 참아내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축제가 아니라, 더러운 딜이고, 부끄러운 우리들의 비겁한 변명이 아닐까?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사느냐고?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열광하느냐고? 그렇지 않으면 사자들의 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던져 주고 즐거워 하며 그들이 죽어가던 모습 속에 환호하던 로마 콜로세움의 역사와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