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고등학교 시기부터는 앞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부모는 도와 주어야 한다. 자신의 진학과 진로부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부모는 곁에서 돕는 역할에 충실해야지 '결정지어 주는'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

(사진:컨슈머와이드DB/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컨슈머와이드-김정연]  필자가 서울의 어느 한 대학에서 취업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을 때 일이다. 군필(병역의무를 마침) 4학년 남학생 두 명이 취업관련 상담을 하기 위해 찾아왔다. 두 손에는 대기업 지원을 위한 자소서(자기소개서)가 들려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지고 온 자소서를 내밀며 좀 봐 달라고 했다.

필자는 가지고 온 자소서를 책상에 엎어놓고 두 학생에게 “전공이 뭐지? ","왜 그 전공을 선택했지?”라고 물었다. 둘 다 ‘경영학과’라고 대답하고는 한 학생은 엄마가 경영학과에 가야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선택했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부모님께서 경영학과가 제일 무난하다고 해서 들어왔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자소서만 봐주면 되지 왜 이런 걸 묻지’라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취업을 위해 제출해야 하는 자소서에는 지금 질문하고 있는 내용들이 핵심이어서 그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필자는 이어 대기업 기획팀과 총무부에 입사하려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한 명은 '아빠가 기획팀이 회사에서는 가장 힘이 있다고 이리로 가라고 해서'라고 답했고 다른 한 명은 '엄마가 너는 총무부에서 하는 일이 맞는다고 해서' 지원한다고 했다. 성인이 된 지 한참이나 된 이 두 사람이 한심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아마도 이들은 그 흔한 사춘기 반항도 잠시,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일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현재 어떤 선택도 자발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내 아이의 인생일지라도 내가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무슨무슨 시대'라고 선을 그을 수 있는 정도를 넘어 세상은 시시각각으로 생소하고 상상하지 못하는 모양으로 변하고 있다. 부모가 살아온 세상은 이미 호랑이 담배피던 옛날이 되어 자녀의 선택에 개입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신이 보고 들은 작은 경험들이 전부라는 착각으로 아이에게 적극적인 훈수를 둔다.

통탄할 점은 그 당시 찾아왔던 학생들만 확신할 수  없는 부모의 말에 자신의 인생을 맞추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정적으로 이들을 자신의 인생에서 엑스트라로 추락시키는 시기는 고등학교 때이다.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사회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라도 들어야 기본은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느냐 하면 이것도 아니다. 여기저기서 들었던 편협적인 정보를 버무려 부모의 수준에서 결정한 미래에 의심 없이 두 번 없을 자신의 삶을 던진다.

더 빠르면 좋겠지만 적어도 고등학교 시기부터는 앞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자신의 진학과 진로부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부모는 곁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이 때, 돕는 선에서 마침표를 찍어야지 도를 넘으면 절대로 안 된다.

필자가 '자녀의 선택과 결정에 있어 부모의 도움이 적절한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왜 그것을 배워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아이의 답변이 분명하고 합리적이며 누구나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면  부모의 어시스트(운동경기에서 패스해서 득점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가 바람직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오늘이라도 아이에게 질문해 보기를 권한다. 부모로서 아이의 진로와 진학에 대해서 필요한 도움을 알맞은 수준에서 제공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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