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와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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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월드베스트 출판사 책 'The man, the Boy and the Donkey' 표지 캡처)

[컨슈머와이드-이정민]  어린 시절에는 명절이 다가오면 무조건 신이 났던 기억이 난다. 친척들과 만나는 시간도 즐거웠고 푸짐한 먹거리도 신나는 일이었다. 청소년기 이후부터는 즐거움보다는 부담이 커지기 시작했다. 대학입학에 대한 부담스러운 시선들도 그렇고 누군가와 비교되는 상황도 불편해지면서 명절의 이미지는 퇴색되기 시작했다. 이후 결혼, 출산, 육아 등의 시기를 겪으면서 여전히 명절은 불편한 시간이다. 지속적인 타인과의 비교로 인한 부담스러운 시간이 명절이다. 비교우위를 가질 수 없다면 일단 비교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말고삐를 끌고 부리나케 걸어 가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어떤 행인이 혀를 끌끌 찼다. 
"아무리 봐도 어리벙벙한 사람들일세 그려, 말이 있으니 누구라도 타고 가면 좋으련만......"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아들은 얼른 아버지를 말에 태우고 자기는 고삐를 끌고 갔다. 한참 길을 갔는데 나무 아래서 쉬고 있던 아낙네들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애구 저런, 고삐 잡은 어린 아들이 가엾구나. 얼마나 다리가 아프고 힘들꼬."
그 말은 들은 아버지가 이번에는 아들을 말에 태우고 자신이 말고삐를 잡았다. 한참을 가는데 김을 매던 마을사람들이 큰소리로 쑥덕거렸다. 
 "아들은 말 타고 애비는 고삐를 잡고가다니. 천하에 둘도 없는 불효자식이로구나."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와 아들은 누구한테도 손가락질을 받지 않기 위해 두 사람이 함께 말을 탔다. 둘이서 말에 올라 터덜터덜 길을 가는데 길 옆 정자에서 바둑을 두던 노인들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짐승이라도 힘이 드는 법인데 어찌 저리 인정머리 없을꼬. 말 못하는 말이 가엽구나."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그 즉시 말에서 내려 말을 함께 메고 걸어갔다.  

이 우화는 주체성 없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에둘러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누가 이들 부자에게 함부로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사람살이는 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주변의 크고 작은 비교와 평가에 귀 기울이게 마련이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사회성이 부족한 독특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물론 불가(佛家)의 선사와 같이 비교와 평판 따위를 가벼이 여기고 극복한 사람들은 참 자유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토록 참 자유인일 경우는 드물 것이다. 

또한 이 우화는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라캉은 나의 욕망이 실은 타인의 욕망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자신이 간절한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이 욕망할 만한 것,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사회적 명성, 미모 가꾸기, 명품으로 치장하기, 최고급 스포츠카 등을 욕망하는 것은 철저히 나의 욕망인가, 아니면 부모를 비롯한 주변인들의 욕망의 반영인가. 이에 대한 진단은 간단하다. 혹여 사람들의 마음에 들고 싶고, 시샘과 매혹추구의 대상이 되고 싶은가? 시샘을 받고 싶다면  당신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게 맞다. 당신이 어떤 대상을 스스로 욕망한다고 믿지만 실은 감상적인 거짓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나는 어디 있는가? 타인의 욕망 속에 갇혀 있는 한 나는 어디에도 없다. 타인의 욕망(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혀 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비교와 평판에 익숙한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이처럼 타인의 욕망과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는 쉽지 않다. ‘말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말을 메고 가는’ 우화 속 부자에게 함부로 손가락질을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니까. 
                                 

 

㈜한국체험교육센터 대표이사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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