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내면을 볼 수 있는 여유와 지혜
[컨슈머와이드-이정민] 과천 경마장에 가면 예시장이라는 곳이 있다. 경기에 출전하는 경주마들을 고객들에게 선보이는 곳이다. 예시장에서 경주마 외면만 보고 베팅을 하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외면과 달리 내공이 뛰어난 다크호스들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준마를 잘 고르기로 유명한 중국의 백락(伯樂)은 일찌감치 이를 간파하고 “다른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비쩍 마른 말 중에 준마가 있는 법” 이라고 충고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야말로 외모와 반비례하는 사례가 적지 않으니 상대방의 내면을 볼 수 있는 여유와 지혜가 필요하다.
제후국 간의 대립이 거센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와 으르렁거리며 대립하던 제나라의 안영(晏嬰)이 외교적인 담판을 지으러 초나라에 갔다. 안영은 재상 직에 있었지만 체구가 작고 외모가 추레한 것이 볼품이 없었다. 소식을 들은 초나라 왕은 성문 담벼락에 작은 구멍을 내도록 명령하고 접대를 맡은 관리를 불러 말했다. “제나라의 안영이란 자는 키가 자그마하다하니 그에 걸맞은 대접으로 미리 기를 꺽어 놓아야겠다. 그가 당도하면 성곽 담벼락의 그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도록 조치하라.”
이윽고 사두마차를 탄 안영이 도착하자 관리는 성문을 닫아놓은 채 안영을 담벼락으로 인도했다. 담벼락의 작은 구멍 앞에 선 작은 체구의 안영을 보고 초나라 사람들은 서로 킥킥거리며 비웃었다. 그런데 안영은 조금도 표정이 흐트러지지 않고 시큰둥하게 뇌까렸다.
“어허, 오늘 내가 길을 잘못 들어 개나라에 온 모양이구나. 이 나라는 멀쩡한 문을 두고 개구멍으로 드나드니 참으로 개 같은 사람들 아닌가.”
이 말을 들은 초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부끄러워서 곧 바로 성문을 열었고, 사두마차에 다시 오른 안영은 당당하게 궁궐로 들어갔다. 궁전으로 가자 초나라 왕이 높은 대전에 앉아 거만하게 굽어보며 말했다.
“당신네 제나라에는 사람이 그리 없소이까?”
그 말을 듣고 안영이 조용하게 치받았다.
“어찌하여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까? 제나라의 수도 임치에는 번화한 거리에 칠팔 만 호의 집들이 이어져 있어 수십만명의 인파로 넘쳐난답니다. 거리에는 사람과 말 수레가 가득하여 어깨와 수레바퀴통이 부딪치고 발부리가 서로 채이며 펄럭이는 소매는 하늘을 덮고 있습지요.”
초나라 왕은 순간 움찔했지만 표정을 감추고 다시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어찌 당신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단 말이오?”
그러자 안영이 한바탕 껄껄 웃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나라는 다른 나라로 사람을 파견할 때 엄격히 정한 규칙을 따른답니다. 재능이 있는 현자는 유능한 임금에게 보내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무능한 임금에게 보내는 것이 그것입니다. 저는 재능이 졸렬하여 바로 초나라에 파견된 것입니다.”
순간 초나라 왕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기록된 이야기이다. 초나라 왕은 외교문제로 파견된 제나라 사신 안영의 추레한 겉모습을 보고 그를 은근히 겁박하려 든다. 기선을 제압하여 유리한 담판을 지으려는 속셈. 하지만 안영은 오히려 간단한 말로 초나라왕의 약점을 찔러 그를 감복하게 만든다. 이처럼 사람의 겉모습은 겉모습일 뿐 내면의 본질과는 하등 관련이 없다.
요즘이라고 달라질 게 있겠는가. 우리는 흔히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이러려니 저러려니 하며 그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려 든다. 하지만 외면을 보고 내면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성인이라 일컫는 공자(公子)조차도 외양으로 사람을 잘못 판단한 것에 대해 크게 후회한 적이 있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아예 ‘관상은 폭력’이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상이니 저러할 것이라는 판단은 전체주의적인 사고에 기인한 위험한 폭력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섣부른 판단보다는 내면을 잘 살펴봐야 한다. 준마를 잘 고르기로 유명한 백락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비쩍 마른 말 중에 준마가 있는 법이다.”
㈜한국체험교육센터 대표이사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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