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은 자기 역할이 있어 '소중한 존재'

(사진출처:국립중앙과학관, 한국데이터진흥원)
참새와 붕새  (사진출처:국립중앙과학관, 한국데이터진흥원)

[컨슈머와이드-이정민]  학생들을 교육하다보면 이전 세대에 비해 열정도 없고 노력도 안한다. 고생없이 쉽게 돈 버는 일에만 관심이 많다. 한 번은 중학생들에게 선호 직업을 물었더니 1순위가 ‘건물주’다. 우스개소리로 ‘주님 위에 건물주님’이라는 말도 한다. 또 어떤 학생들의 직업 1순위는 ‘돈 많은 백수’다. 한마디로 놀고 먹는 것이 목표다. 기성세대의 잣대로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놀고 먹기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도 저마다 개성이 있고 자세히 살펴보면 쓸모있는 구석이 하나쯤은 있다. 공부는 못해도 컴퓨터를 잘 다루거나 노래를 잘 하거나 춤을 잘 추거나 청소를 잘하거나 등등 살아가는데 필요한 크고 작은 재능은 모두 가지고 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 모두 소중한 사람이고 대접 받고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사람들은 유용(有用)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무용(無用)의 역할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 무용의 역할을 잘 알아야 그 쓰임을 논할 수 있다. 대지는 매우 넓고 크다. 하지만 사람들이 쓰며 사용하는 곳은 두 다리를 용납할 만한 곳뿐이다. 다른 곳은 쓰임새가 없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두 다리로 땅을 디딘, 이른 바 쓸모 있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땅을 무용지물이라고 여겨 다 파 버린다면 주변은 깊은 연못으로 되어 버린다. 그러면 그 사람은 겁에 질려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한다. 파 버린 땅이 얼핏 보기엔 무용지물 같지만 사실 큰 쓰임이 있는 것이다.”<노자(老子)>
 
  “수레바퀴는 서른 개의 살이 하나의 차축에 이어져 연결되어 있다. 살과 살 사이의 빈 공간이 있기에 차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다. 빈 공간이 없다면 말이 끄는 수레바퀴는 험한 길을 견디지 못해 결국 부수어지고 말 것이다.”<장자(莊子)>

  <학기(學記)>에서도 비슷한 도리를 설명하였다.
  “북 하나만으로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 내지 못한다. 그러나 북이 없다면 또 아름다운 음악도 완전하지 못하다. 물은 오색찬란한 색깔이 없다. 그러나 물이 없다면 갖가지 색깔도 찬란하지 않다.”

   <노자>, <장자(莊子>, <학기(學記)>에 나오는 위의 세 가지는 모두 하나의 도리를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남송시대의 홍매는 <필기>에서 아래와 같이 평하고 있다. 
  ‘새들은 날개를 치며 날아간다. 날아가는 곳과 다리는 일견 무관해 보인다. 그런데 두 다리를 노끈으로 꽁꽁 맨다면 새들은 날지를 못한다. 사람들은 두 다리로 달음질을 한다. 그렇다고 두 팔을 매 놓으면 사람들은 뒤뚱뒤뚱하며 달음박질을 하지 못한다.’  

결국 무용지물과 유용지물은 서로 같은 가치로 존재하는 것이다. ‘無用之用’은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실상보다 더 쓸모 있는 것이 되는 이치를 말한다. 유용과 무용은 이처럼 서로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천지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나름의 존재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에게서야. 
그런데, 우리는 곧잘 이러저러한 사람을 가볍게 평가하고 심지어 쓸모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다. 학벌로, 돈으로, 외모로, 지식으로 얕잡아 보고 그 쓸모를 잣대로 하여 편을 가른다. 그러나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평가되어서는 안 되는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 존재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신흠의 ‘참새’라는 시가 있다. 

  참새는 작은 새인지라
  느릿느릿 들녘을 날아가네.
  그래도 살 곳 있는데
  붕새는 어이해 큰 바람만 타는지.

 붕새가 낫다, 혹은 메추라기가 낫다고 하는 식의 가치 판단을 버릴 때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신흠은 설파한다. 작은 참새가 없다면 어찌 거대한 붕새가 있을 수 있겠는가? 유용과 무용의 이치를 안다면 천하에 쓸모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한국체험교육센터 대표이사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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