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흉노, 혁신의 아이콘'.... '말(馬)덕분 ' 
[칼럼] '흉노, 혁신의 아이콘'.... '말(馬)덕분 ' 
  • 이정민
  • 승인 2018.11.26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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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이정민)
말 등자에 발을 딛고 화살을 쏘는 흉노족의 파르티안샷 (사진제공:이정민)

[컨슈머와이드-이정민]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계절이다. 첫 눈이 내려 거의 가을의 정취는 사라져가고 있지만 가을을 떠올리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이야기는 상상하는 것처럼 썩 아름답지는 않다. 가을의 풍요와 살찐 말을 탄 흉노의 약탈을 우려하는 탄식이 동시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천고마비가 유래된 중국 전한(前漢)시대는 오랜 기간에 걸쳐 국경을 넘나드는 북방의 흉노족으로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때다. 이동을 기본으로 하는 유목기마민족인 흉노는 스피드가 빼어난 말과 승마술이 뛰어나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변경의 정주민들은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가을이 되면 국경을 넘어와 약탈을 일삼았는데 북방의 춥고 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나라에서는 일단의 관군을 보내 흉노를 대적하고자 힘썼지만 치고 빠지는 전술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여기서 나온 말이 천고마비다. 가을이 되어 말의 살이 찔 때 즈음이면 북방오랑캐가 침략과 약탈을 일삼으니 대비해야 한다는 데서 유래된 고사성어다.  

흉노는 요즈음 전투로 치면 게릴라전의 명수였다. 잘 먹인 말을 재주넘듯 가볍게 타는가 하면  등자에 발을 디딘 채 달리는 말위에서 뒤를 돌아 활을 쏘는 기법(파르티안 샷)을 구사하니 도무지 막을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진시황은 흉노의 침입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이를 비웃듯 성을 훌쩍 뛰어넘어 무용지물로 만들곤 했다. 흉노에 이를 갈던 후대의 한고조 유방은 흉노를 격파하고자 전쟁을 벌였지만 오히려 사로잡힐 뻔한 수모를 겪으며 겨우 빠져나왔다. 이후 한나라 황실의 딸을 흉노의 왕에게 시집보내고 매년 술과 쌀 견직물을 주어 화친을 구하는 굴욕을 맛보아야했다. 쓸개를 씹으며 때를 기다리던 후대의 한무제는 흉노를 서북방으로 몰아내는데 온 힘을 기울였고 마침내 성공하기에 이른다. 흉노의 재래마를 능가하는 천리마(대완산마)를 구해와 이를 양성함으로써 게릴라 전술에 대적하게 한 것인데 체격 좋은 말로 토종말을 제압하는 전략이 들어맞은 것이다. 그렇다고 흉노가 일거에 무너진 것은 아니다. 흉노는 서북방으로 밀려났지만 상당기간 중앙아시아 일대를 호령하는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그렇다면 흉노의 강함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흉노는 말이라는 이동식 병기를 핵심 무기로 삼았고 자유자재의 기마술을 체득한 다음 치고 빠지는 전술을 펼쳤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말 위에서 발을 편하게 딛도록 하는 등자를 개발하여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가능한 페르티안샷을 세계최초로 구사했다. 빠른 속도의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도록 일단의 말을 데려가 번갈아 갈아타며 달렸고 육포와 같은 가벼운 식량을 고안해냈다. 흉노는 요즈음으로 치면 새로움에 새로움을 더하는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셈이다. 

 

 

 

㈜한국체험교육센터 대표이사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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